비상 계엄 후 1년은 한국 정치의 암흑기였다. 대통령 권력은 자멸하고 다수당은 폭주했다. 흑백 논리와 양극단 대립, 강성 정치가 활개 쳤다.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는 악마 취급했다. K민주주의의 위기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미래도 가로막고 있다” “희망이 안 보인다”고 한다. 한국 정치를 정상화할 방법은 없을까? 정치 분석 전문가인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에게 물었다.
그의 진단은 명쾌했다. 지금 정치를 파괴하고 있는 건 선출된 권력과 여야의 강성 지지층이라고 했다. 나만 옳다는 독선과 대화·협치 실종이 ‘정치 없는 민주주의 위기’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같은 협치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했다. “레이건은 업무 시간의 70%를 야당과 만나 설득하는 데 썼습니다. 야당 하원 의장에게 ‘당신과 함께하지 못하면 천국행 티켓을 포기하겠다’고 말해 정적까지 감동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6년간의 여소야대를 극복하고 최고 치적의 소통 대통령이 됐습니다.”
김 교수는 “강성 당원 중심의 양극단 정치를 바꾸려면 중앙당부터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중임제 개헌보다는 정당과 선거 개혁이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리더는 지지층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흑백이 아닌 회색이 아름다워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했다.
그의 진단은 명쾌했다. 지금 정치를 파괴하고 있는 건 선출된 권력과 여야의 강성 지지층이라고 했다. 나만 옳다는 독선과 대화·협치 실종이 ‘정치 없는 민주주의 위기’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같은 협치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했다. “레이건은 업무 시간의 70%를 야당과 만나 설득하는 데 썼습니다. 야당 하원 의장에게 ‘당신과 함께하지 못하면 천국행 티켓을 포기하겠다’고 말해 정적까지 감동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6년간의 여소야대를 극복하고 최고 치적의 소통 대통령이 됐습니다.”
김 교수는 “강성 당원 중심의 양극단 정치를 바꾸려면 중앙당부터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중임제 개헌보다는 정당과 선거 개혁이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리더는 지지층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흑백이 아닌 회색이 아름다워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했다.
정치 실종된 K민주주의 암흑기
-지난 1년 한국 정치를 평가한다면.
“정치가 완전히 실종된 ‘정치 없는 민주주의’였다. 집권 세력이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다수의 폭정이 지배했다. 적대적 정치로 상대를 악마화하고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흑백 논리가 판쳤다. 민주주의는 본래 불완전하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흑백을 섞은 회색이 아름다워야 민주주의가 꽃핀다. 그런데 회색분자는 증오한다. 위험한 민주주의로 가고 있다. 여야 모두 K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실패 원인은 뭔가.
“지극히 왜곡되고 잘못된 인식 구조가 만들어낸 참사다. ‘나는 모든 걸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 정치적 무지와 무능, 김건희 여사에 대한 삐뚤어진 신념이 계엄이라는 일탈을 낳았다. 당시 이재명 대표가 아무리 범죄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고 해도 만나서 대화했어야 한다. 그런데 2년간 만나지 않았다. 정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협치의 절벽을 만들었다. 거부권 발동밖에 할 게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대선 승리를 도운 이준석·안철수와 선거 연합을 스스로 깨버렸다. 외연 확대도 협치도 하지 않고 통치 공간과 지지층을 축소했다. 정치적으로 무능한 대통령이었다.”
정치 9급들이 9단 행세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여야 모두 권력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권력 확장에만 혈안이다. 민주당은 다수의 폭정으로 가고 있고, 국민의힘은 무기력하다.”
-김영삼(YS)·김대중(DJ) 시대보다 퇴보했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두 사람은 경쟁자였지만 민주화를 위해 서로 협력했다. 대한민국에 정치 9단은 YS·DJ·JP(김종필) 세 사람뿐이다. 지금 정치 9급도 안 되는 사람들이 9단이라고 우긴다. YS와 DJ식 협치로 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대위기다.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는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점진적으로 무너진다’고 했다. 윤석열과 트럼프 같은 대통령들이 민주 정치를 파괴한다. 입법 권력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상대를 제압하고 악마화하며 법치와 규범을 무너뜨린다.”
-양극단 정치, 팬덤 정치의 폐해도 크다.
“소수의 강성 당원과 지지층이 정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정치 리더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이들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당원들도 자기들이 권력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당원 중심 정당으로 간다고 하는데 권력 탄생 구조가 크게 왜곡됐다.”
-유튜브 권력도 생겼다.
“유튜브가 가진 표 때문이다. 의원들이 너도나도 김어준 유튜브에 출연해 고개 숙이고 있다. 비타협의 정치, 양극단의 정치가 거기에 기생한다. 개딸 팬덤 민주주의로 가고 있다.”
-민주당 폭주가 도를 넘는다. 과거 다수당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 사법 리스크다. 방탄 입법이 너무 많았다. 정치의 우선순위도 잘못됐다. 최우선 과제가 내란 종식이라고 한다. 민생은 후순위다. 전통적 민주당은 이렇지 않았다. 민주당이 얘기하는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수구적·퇴행적 진보, 가짜 진보로 가고 있다.”
정적까지 친구로 끌어안은 레이건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취임 때 60% 넘는 지지율을 퇴임 때도 유지한 대통령이 누구인지 아나? 바로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전무후무하다. 그의 별명은 CCO(Chief Communication Officer·최고 소통 책임자)였다. 집무 시간의 70%를 야당 의원 만나는데 할애했다.”
-레이건은 야당을 어떻게 설득했나.
“그는 야당의 파트너인 토마스 오닐 하원의장을 향해 ‘당신과 함께 가지 못한다면 천국행 티켓을 찢어 버리겠다’고 말해 상대를 감동시켰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8년 중 6년은 여소야대였다. 하지만 정적까지 친구로 끌어안는 협치의 리더십으로 정국을 풀어갔다.”
-레이건식 협치가 성과를 거뒀나.
“레이건은 자신의 3가지 핵심 정책만 빼고 나머지는 야당과 타협·양보하거나 장관들에게 위임했다. 그 덕분에 소련을 겨냥한 미사일 방어 체계(MD) 구축과 감세, 노동 유연화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 (레이건의 국방·경제 정책은 소련 붕괴를 이끌어 내고 미국 경제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혜택을 본 게 바로 민주당 클린턴 정부다. ‘유럽의 병자’라던 독일을 되살린 게 슈뢰더 전 총리인데 그 혜택을 메르켈 정권이 본 것과 비슷하다. 국가 지도자는 자기 이익이 아니라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 권력과 입법 권력이 싸우기만 한다. 레이건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중임제 개헌? 정당·선거 개혁부터
-양극단 정치 어떻게 해결하나
“극단 정치의 온상인 중앙당부터 축소·해체해야 한다. JP가 60여 년 전에 공화당 창당하며 만든 게 중앙당이다. 당대표에게 너무 많은 힘이 쏠려 있다. 왜 중앙당이 정책과 공천을 좌지우지하나. 거기에 왜 막대한 국고 보조금을 주나. 그러니 국민 목소리엔 귀 기울이지 않고 강성 지지층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도 중앙당 눈치 보느라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할 수 없다. 미국처럼 오픈 프라이머리(국민 경선제)를 법제화해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줘야 한다. 탈중앙화, 분권화된 블록체인 정당으로 탈바꿈해 중앙당과 강성 당원의 지배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개헌 필요성은 없나.
“4년 중임제 개헌이 정치 개혁인가. 그걸로 한국 정치가 바뀐다면 내가 교수직을 당장 내려놓겠다. 중임제 하면 ‘박근혜·윤석열·이재명 8년’이 될 뿐이다. 국민에게 공천권 주고 신인에게도 공정한 기회 주는 정당·선거 개혁이 우선이다. 그러면 의원들이 소신에 따라 활동하면서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고 의회도 제대로 운영할 것이다.”
YS·이건희처럼 말 줄이고 경청을
-이재명 정부 7개월을 평가한다면.
“이 대통령은 취임 때 통합·협치·실용을 내세웠다. 그게 이뤄졌나. 만일 이 대통령이 특검 유보하고 노란봉투법 대신 52시간 규제 풀었다면 어땠을까. 지지층은 반발해도 국민은 박수 쳤을 것이다. 2차·3차 특검 하면 미래 아젠다만 죽는다. 대통령 변호인과 사시 동기들을 줄줄이 중용한 것도 문제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 논란을 방치하면 터질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윤석열 정부의 김건희를 봐야 한다. 정청래 대표와 ‘명·청 갈등’도 전례 없는 일이다.”
-지지층 반발은 어떻게 하나.
“지지층에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지층만 보지 말고 탄핵의 강을 건너 통합을 위한 용기를 냈어야 한다. 중국에선 국민당과 공산당도 합작을 했다. 한동훈 전 대표와 손잡지 못할 이유가 뭔가.”
-말의 품격 논란도 있다.
“박정희·김영삼·이건희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말 자랑하지 않고 남의 말을 먼저 들었다. 지도자가 말이 앞서거나 말이 바뀌면 안 된다. 말 줄이고 선청(先聽)해야 한다.”
정치 거절했지만 폴리페서는 필요
-한국 정치가 선진화하려면.
“정치에는 고속 압축 성장이 없다. 중앙 집권화된 권력 구조를 깨야 한다. YS·DJ와 같은 정치 거인, 통 큰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 팬덤 정치를 벗어나 정치적 책임 의식이 있는 시민이 많아지면 좋겠다.”
-여의도에서 영입 제안받은 적 없나.
“여러 번 있었다. 그렇지만 학자의 길이 좋다. 정치권에 조언·평가하며 정치 참여한다는 점에선 나도 폴리페서다. 정치를 바꾸는 폴리페서는 필요하다.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폴리페서가 나쁠 뿐이다.”
-AI 시대에 민주주의가 유지될까.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이다. 그런데 AI는 ‘이렇게 가면 망한다’ ‘이 길이 좋다’는 대안을 제시해 준다. 시나리오를 주니 타협이 가능하다. AI·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개인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도 있다. AI끼리 경쟁시키면 오류도 줄어든다. 빅 브라더 우려가 있지만 활용하기에 달렸다.”
☞김형준
김형준 교수는 1957년생으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국민대·명지대 교수를 거쳐 배재대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정치·선거 분석 전문가로 한국선거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학자이자 시사 해설·정치 평론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한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치 개혁 방안을 제시해 왔다.
[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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