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사랑스럽고 온갖 캐릭터가 펼치는 연기는 환상적이다.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했던 애니메이션 속 세계가 과잉된 영상이나 기술에 기대지 않고 온전한 인간의 상상력과 몸으로 구현된다. 무대로 다시 찾아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연극이란 틀에 넣어두기엔 아까운 극장형 판타지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등 일본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성싶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들어낸 애니메이션들. 거장의 8번째 장편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작품이다.
줄거리는 부모와 함께 시골로 이사하던 열 살 소녀 치히로가 낯선 세계에서 신비한 온천장 주인인 마녀 유바바와 계약을 맺고 하녀로 일하며 여러 모험을 거쳐 훌쩍 성장한다는 원작 그대로다. ‘보호받는 아이’가 아니라 ‘결정하는 주체’로서 10살 소녀를 위한 영화, ‘일한다’는 것의 존엄함을 알려주는 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거장 미야자키의 주제의식이 무대에서도 또렷하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등 일본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성싶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들어낸 애니메이션들. 거장의 8번째 장편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작품이다.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치히로가 하룡(河龍) 하쿠와 대화하고 있다. 판타지 무대극으로서 용과 각종 신 등이 사람 손으로 움직이는 인형 등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등장해서 연기를 펼친다. TOHO 제공 |
줄거리는 부모와 함께 시골로 이사하던 열 살 소녀 치히로가 낯선 세계에서 신비한 온천장 주인인 마녀 유바바와 계약을 맺고 하녀로 일하며 여러 모험을 거쳐 훌쩍 성장한다는 원작 그대로다. ‘보호받는 아이’가 아니라 ‘결정하는 주체’로서 10살 소녀를 위한 영화, ‘일한다’는 것의 존엄함을 알려주는 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거장 미야자키의 주제의식이 무대에서도 또렷하다.
특히 파스텔톤의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감과 질감이 완벽하게 재현된 무대 디자인과 조명, 의상과 소도구 등은 정교한 미장센을 이루며 배우들의 정교한 연기와 맞물린다. 신들의 세상으로 흘러들어 간 치히로네 부모가 낯선 노점에서 식탐을 부리다 돼지로 변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온천욕으로 휴식을 취하려는 신들의 행차, 용의 비상, 올빼미로 변신해 날아가는 마녀, 거미처럼 긴 팔을 여럿 가진 할아범의 불가마실까지 영화 속 이미지 핵심을 무대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특히 마법을 ‘화면’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물성(퍼펫, 장치, 소도구)으로 보여주는 선택은, 화려한 특수효과에 익숙해진 공연가의 유행을 되묻게 한다. 이처럼 일본이 자랑하는 원작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옮긴 제작진은 영국 뮤지컬 1번지 웨스트엔드 출신이 이끌었다. ‘레 미제라블’을 만든 거장 존 케어드가 연출을 맡고 퍼펫(인형) 디자인 및 연출에 ‘워 호스’로 명성을 얻은 토비 올리에, 무대 디자인에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 등을 담당했던 존 바우저 등이 모여 한 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일반적인 대극장 뮤지컬 제작 규모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일본에서 날아와서 높은 일본 극무대 수준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겼구나”였던 극 초반 감상은 후반부에 이르러선 ‘원작, 그 이상의 감동’으로 증폭된다. 치히로가 가오나시와 나란히 전차에 앉아 유바바 언니를 찾아가는 저녁 풍경이 대표적이다. 물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진 풍경, 정차역의 적막, 그림자 같은 존재들. 초현실적인 풍경이면서도 익숙한 ‘쉼’의 정서가 깔린다. 온갖 유혹으로 환심을 사려 했던 가오나시를, 최소한의 친절과 절제로 진정시키는 치히로의 변화도 그 고요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치히로가 가오나시와 전철에 올라 마녀 유바바의 언니 제니바의 집으로 향하는 모습. TOHO 제공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부터 미야자키와 협업해온 히사이시 조가 이 작품을 위해 만든 음악 역시 극장보다 무대에서 훨씬 더 큰 울림을 들려준다. 무대 안쪽에서 11인조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선율은 그 느린 진행과 여백이 무대 위 정적과 결합한다. 어느 순간 관객은 장면을 본다기보다 그 안에 잠시 머물게 된다.
원작에서도 유바바 목소리를 연기했던 나쓰키 마리의 밀도 높은 연기 등 출연진 또한 일본 극무대 저력을 보여준다. 특히 지난 7일 개막공연에서 ‘치히로’로 무대에 선 가미시라이시 모네는 2022년 일본 초연 때부터 주역을 맡아온 내공을 펼쳐냈다. 대형 욕조에 빠지는 장면이나 마녀의 방을 찾아가는 사다리 장면 등에서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동작을 무대 언어로 치환해서 동작의 리듬과 감정의 진폭을 함께 살린다.
개막 공연에 앞서 국내 취재진을 만난 이 배우는 “치히로는 항상 두 발로 당당하게 서 있다”고 강조했다.
“원작을 보고 깨달은 건 치히로가 항상 두 발로 똑바로 당당하게 서 있다는 점입니다. 결코 어느 한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두거나 벽에 기대지 않고 반드시 자신의 두 발로 스스로 서 있는 그 모습이 정말 좋아서 연기할 때의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치히로가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싶을 정도로 과감한 행동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분명 자신의 직감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치히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믿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름의 소중함’입니다. 주인공이 이름을 빼앗겼다 다시 찾는데 부모님께 받은 이름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이 가득한 보물인지 관객분들이 느껴주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22일까지.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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