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날씨통제사>는 저자인 나를 청소년 독자들과 연결시켜 준 고마운 책이다. 기후위기, 불평등, 소수자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선명하게 드러낸 이 단편집은 중고등학교에서 환영받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종종 생겼다.
세종시의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던 중 한 학생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학생은 기후위기를 주제로 짧은 스피치를 할 정도로 상당한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3차 산업혁명인데,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사회적 격차를 원인이라고 설명한 강연 내용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학생의 말이 맞았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사회적 격차이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의 단절이기도 하다. 플랜테이션 농업이고, 정신과 물질 사이의 불균형이며, 남들보다 더 가져야 행복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세종시의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던 중 한 학생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학생은 기후위기를 주제로 짧은 스피치를 할 정도로 상당한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3차 산업혁명인데,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사회적 격차를 원인이라고 설명한 강연 내용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학생의 말이 맞았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사회적 격차이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의 단절이기도 하다. 플랜테이션 농업이고, 정신과 물질 사이의 불균형이며, 남들보다 더 가져야 행복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크릴새우에서 추출한 오메가3와 연어 추출물로 만든 화장품, 일회용 플라스틱, 그 모든 것들 중 기후위기의 원인이 아닌 것은 없다. 학생도 나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전에는 그 학생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으니까.
지식과 정보로 자신을 무장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웠다. 높은 점수를 받고 1등 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현실에선 번번이 부딪히고 넘어졌다. 나는 사지선다형 문제에서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방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정답은 두 개도 세 개도 될 수 있다는 것, 어떤 경우에는 답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때로는 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애초에 정답 같은 건 없다는 걸 납득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했다.
“내가 정답” 확인 원하는 학생들
부산의 중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열 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면, 우린 그를 건물주라고 부르며 부러워하죠. 하지만 누군가 자기가 다 먹지도 못할 열 개의 도시락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건물주란, 투자자란, 불필요한 욕심을 부리는 우스꽝스러운 사람은 아닐까요?”
강연이 끝나자 한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낯빛이 조금 어두웠고, 표정이 매우 불편해 보였다.
“좀 전에 한 사람이 가진 열 개의 도시락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하면 개인의 행복도 증가하거든요.”
존 스튜어트 밀. 제러미 벤담. 애덤 스미스. 한때 내 머릿속에 발을 뻗고 들어앉아 있던 경제학자들과 사회철학자들이 떠올랐다. 이제 막 자유주의 경제학을 습득하기 시작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틀릴 리 없다는 단단한 믿음을 가진 저 학생, 아니, 그가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 벼락치기식 암기법으로 만점과 표창을 받았던 학창 시절의 내가, 성인이 된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내가 맞고, 너는 틀렸어.
나는 학생에게 대답했다. “너는 경제학에 관심이 많구나. 나도 중학교에서 공리주의를 배웠지. 지금은 기후위기 문제가 시급한 상황인데 생태학에도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때?”
학생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그는 생태학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자신이 쌓아온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안심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일들에 골몰하며 살아간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채식을 하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그러다 실수로 적어낸 답안지처럼 다시 그 순간이 떠오른다. 내가 한 답변이 틀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인생에서 틀린 것은 없다. 인생은 시험이 아니니까. 그런데도 자꾸만 답안지를 고쳐 쓰고 싶다. 결국 나는 새로운 답안을 준비했다.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해도 분배가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개인의 행복은 증가하지 않는다.
삶은 답 고치고 탐구하는 과정인데…
국내총생산(GDP)이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한 나라의 경우가 그 방증이다. 그게 내가 새로 준비한 답안이었다. 하지만 이번 답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체화되지 않은 남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네가 경제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럽다. 존 스튜어트 밀 말고 스티븐 샤비로 같은 범심론자들의 책도 한번 읽어보는 건 어때? 어딘가 꼰대 같다.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나는 학생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네가 틀렸고, 내가 맞다고.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선생님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빨간 색연필로 브이 표시를 하고, 점수를 깎고,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때리고, 새로운 답을 외우게 하고 싶었다.
“열 개의 도시락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욕심쟁이일 뿐이야. 5번 문제의 정답은 1번!”
최정화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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