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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법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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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국제법이 필요 없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이 말은 오래도록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국제인권법을 진지하게 접한 것은 판사가 된 직후였다. 그전까지 우리나라가 ‘국제법 일원론’을 채택했다는 정도로만 인식하다가 ‘왜 판사들은 국제인권법을 재판규범으로 삼지 않느냐’는 질타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인권조약을 재판에 적용하기는커녕 그 해석과 적용을 알지조차 못하는 것 아닌가. 당황스러워 동료들과 고민을 나눴다. 당시에는 국제인권법을 재판규범으로 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판사들도 꽤 많았다. 국내법은 입법 당시 치열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기에 사회 구성원에게 규범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국제인권조약은 외교 전략으로서 가입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국내규범으로 인정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었다.

다자조약이든 양자조약이든 인권조약이든 통상조약이든 체결·공포된 조약은 모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하니 재판규범으로도 삼는 것이 헌법, 즉 주권자의 의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재판규범으로 고려하기에는 나부터 몰라도 너무 모르니 반박하는 것도 민망했다. 그러던 것도 옛이야기다. 이제는 각급 법원 판결문에 국제인권법이 종종 등장한다. 해석과 적용이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 재판규범으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의문과 논쟁과 수용의 과정이 국제법의 역사에선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해석도 통일되지 않고, 집행할 강제력도 확보되지 않은 법이 무슨 법이냐는 직관적인 의문이 계속 튀어나왔다. 영토와 주권과 전쟁을 규율하는 전통적인 국제공법이 등장했을 때부터 나온 의문이고, 국제재판소들이 설치되어 운영된 이후에도 실효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적 인권의 개념을 세우고 주권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 및 인권 침해 책임을 인정하며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허문 국제인권법에 대해선 더욱 큰 물음표가 찍혔다.

히잡 착용이 신앙에 따른 자발적 복종인지 여성 인권 침해의 상징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인권 침해 국가에 어떤 책임을 어떻게 물릴 것인지는 또 어떻게 답할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국제인권법의 규범성을 인정했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진했다. 개인적으로는 국제인권법의 실효성은 이를 실효적으로 만들겠다는 여러 주체들(국가, 국제기구,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확보된다는 믿음 아래 국제인권법이 국내에서 재판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힘을 보탰다. 그런데 국제인권법은 둘째치고 실질적 규범력이 훨씬 강하다고 여겨졌던 국제법의 클래식이 무력해지고 있다. 영토와 주권과 전쟁이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 국제법이 법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이미 종결된 논쟁이 멱살 잡혀 끌려오다 못해 심지어 그 논쟁 이전의 시대로 시계가 되돌려지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이 남긴 교훈의 유통기간은 끝났고, 아노미의 시대로 접어드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국내법은 집행의 강제성이 확보되어 있다. 해석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의해 결국은 통일된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원의 권한도 강력하다. 사법불신이 팽배할 때마다 동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대다수 판사들은 사법신뢰 회복 방안을 고민하지만, 때로는 끝 모를 신뢰 하락에 지친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모두가 승복하고 신뢰하는 재판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재판엔 집행력이 있으니까 결국은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따라야 하는 것, 그것이 핵심 아니냐고. 재판 결과에 좌우되는 사법신뢰가 실제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사법신뢰 회복이란 것이 실질적으로는 욕먹지 않으려는 노력에 불과한 것인지 헷갈린다. 사법불신의 문제가 결국 판사가 욕먹어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별것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럴 리 없다. 힘의 논리로 법을 설명하면 결국 해체되는 것은 법이다. 법원은 대다수 시민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재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압력에도 불구하고 쌓아 올린 법 원칙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재판이 재판 권한과 집행의 강제력을 뒷배로 한 억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충실하게 설득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책무도 갖는다. 그 방법을 열심히 고민하고 그 고민을 진솔하게 나누고 싶다. 그리하여 법의 본질은 힘이 아니라 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임을 함께 깨닫고 싶다. 국내법도, 국제법도 말이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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