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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를 연구하자 [한승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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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역사학계가 위서로 보는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은 ‘환단고기 역주본’.

주류 역사학계가 위서로 보는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은 ‘환단고기 역주본’.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작년 말 한국 사회는 환단고기 이야기로 들끓었다. 12월12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교육 관련 환빠 논쟁이 있지 않나”, “고대 역사 연구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 등의 질문을 한 것이 계기였다. 14일 대통령실은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대해 기관의 입장을 물은 것일 뿐”이며 “(환단고기 관련)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이 역사학자들과 환빠라 불리는 유사역사학 신자들을 ‘학문적 의견 대립’의 주체로 나란히 언급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10월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사이비역사 및 뉴라이트역사학’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정치권과 새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하는 ‘역사의 정치도구화’ 세력을 경계했던 학계는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환단고기라는 책에 대한 역사학적 판단은 이미 완료되었다. 학문적 역사 연구의 첫번째 절차는 사료 비판이다. 이것은 어떤 문헌의 내용에 대해 비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료의 저자와 형성 시기 등을 검증하는 기본적인 과정이다. 이 책이 널리 알려진 1980년대부터 전근대사 연구자들은 환단고기에 포함된 텍스트들이 근대 이전에 작성되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적어도 고대사 연구를 위한 자료는 될 수 없다.



실제로 이 책이 언제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근현대사 분야에서 성과가 있었다. 이 책을 만든 것은 20세기 인물인 이유립이다. 그는 대종교의 분파인 태백교의 교주로, 1960년대 중반 이래 저작들에서 현행 환단고기의 초기 형태에 해당하는 여러 제목의 문헌들을 ‘인용’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것이 1979년에 환단고기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판본과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수정된 부분들의 특징은 단군계 종교의 교의와 관련된 개념이나 고유명사, 방위, 숫자 등을 1970년대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들로 대체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최종 형성 시기는 1970년대 후반 이전으로 소급될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학술 관련 공공기관들은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러나 환단고기와 그를 둘러싼 현상은 중요한 자료로서 연구될 가치가 있다. 다만 그것은 역사학보다는 종교학의 주제다.



이유립은 식민지 시기 이래 단군계 종교들에서 활발하게 작성되었던 신사기, 단조사고, 신단실기 등 역사서 형태의 경전들을 모방하여 환단고기를 편찬하였다. 이전의 유사한 경전들과의 차이는 수록된 글들에 전근대 저자들의 이름을 붙여 오래된 문헌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1970년대 이후 국사찾기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극우 국수주의자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학에서 다루는 ‘신화의 역사화’에 해당하는 현상이다. 나아가 1980년대에 유사역사학이 대중적으로 확산하자 환단고기에 독자적인 주석을 다는 등 경전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는 종교단체들도 나타났다. 이 책은 고대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현대 종교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텍스트다.



또한 종교학은 문헌에 담긴 교리만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 집중한다. 사료 비판 결과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하면 유사역사학 신자들은 그것이 ‘진서 중의 진서’이며 사학자들의 책이야말로 위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서는 작성 시기와 저자를 허위로 밝히고 있는 책이라는 개념이지 진리를 담고 있는 진서라는 말의 반대가 아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이다. 종교학은 이질적인 신념 체계를 가진 사람들의 언어를 해석하는 데 특화된 분야다.



그리고 유사역사학에 대한 애호는 정치 성향과의 상관관계가 비교적 적은 대신 세대 편향이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여야 지지층 모두에서 중장년층 이상에서는 환단고기에 기반을 둔 서사가 잘 수용되나, 젊은 세대로 갈수록 ‘환빠’는 경멸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민족주의 교육의 시기별 차이에서 기인하는 현상으로, 종교사회학적 접근이 유효하다.



그러니 역사학자 여러분, 그동안 시달리느라 고생하셨다. 이제는 짐을 내려놓고 쉬시라. 종교학은 자신과 다른 세계관을 해석하는 데 전문화된 분야다. 환상을 믿는 이들과 다투기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합당한 학문적 실천이다. 따라서 이 수술은 우리가 집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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