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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사유 없는 이미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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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


지난 연말 영국 런던 베이스워터 지역과 토트넘 코트 로드역 부근에 새로 등장한 뱅크시의 벽화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건물 벽과 담장 위에는 부츠와 코트, 겨울용 털모자를 착용한 두 아이가 땅에 누워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은 노숙 아동 문제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얼굴 없는 예술가’로 불리는 뱅크시는 늘 그렇듯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허가받지 않은 공공의 공간에 노숙 아동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그림을 남기고 사라졌다.

뱅크시는 전통적인 ‘소유’ 개념을 전제로 한 작업 방식을 거부해온 작가다. 미술관이나 미술 시장의 틀 안에서 작품을 유통하기보다 거리와 공공장소에 흔적을 남김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해왔다.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을 보며 마음은 유난히 무거워졌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장식이 넘실거리는 시기에 등장한 거리의 아이는 연말의 들뜬 분위기와 대비되며 결핍을 더욱 또렷이 부각하는 듯 보였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기사에 첨부된 두 장의 자료 사진이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벽화 그 자체보다 벽화와 함께 포착된 이미지의 의미였다. 한 장은 벽화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여성의 모습이었고 다른 한 장은 벽화 속 이미지를 흉내 내는 실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장면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었다. 나에게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쉽게 봉합되지 않았다. 이 두 장의 사진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사회 비판을 담은 이미지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의 회로 속에서 가장 신속하게 순환하며 소비되는 운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 자체가 뱅크시 예술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소비의 과정을 외면하기보다 드러내며 이미지가 의미를 획득하는 동시에 상품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노출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소비의 속도 속에서 예술이 점차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과 공유를 위한 이미지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블록버스터 전시의 성공은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깊이보다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적합한 배경이 될 때 증명된다. 맥락에서 분리된 이미지는 곧바로 콘텐츠이자 문화 상품으로 전환되고 그 과정에서 의미는 압축되거나 소거된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순간적인 즐거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곱씹어야만 진정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 장면이 아무런 질문도 남기지 않는다면 예술은 이미 단순한 배경이 돼버린 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고 불편함을 느끼며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 사소한 멈춤이 예술을 소비의 대상에서 사유의 대상으로 되돌리는 출발점일지 모른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오늘, 인간에게 남은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무언가에 마음이 움직여 다시 생각해보고 타인의 현실에 공감하며 새로운 선택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 예술은 본래 그런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에게 사유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 말이다. 뱅크시가 그려낸 아이의 손짓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요구받는다. 예술은 단지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영혼의 깊이를 파고드는 손길이기 때문이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기 전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부 sedailycultu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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