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 '인재 전쟁' 정용재 PD 인터뷰 <하>
격투 로봇에서 2차전지까지, 인재전쟁이 안보전쟁
불행한 인재는 없다
1부에서 인재 선택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면, 2부에서는 기술 현장에서 목격한 변화와 로봇·AI 기술이 군사·안보 영역으로 확장되는 현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공대에 미친 중국–의대에 미친 한국, 인재전쟁’을 연출한 정용재 PD에게 직접 들어봤다. /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
[더팩트|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작년 여름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한국 사회에 적잖은 문제의식을 던졌다. 미국과 중국이 과학기술과 인재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의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대’ 진학에 집중하는 현실을 조명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한국의 미래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부에서 인재 선택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면, 2부에서는 기술 현장에서 목격한 변화와 로봇·AI 기술이 군사·안보 영역으로 확장되는 현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공대에 미친 중국–의대에 미친 한국, 인재전쟁’을 연출한 정용재 PD에게 직접 들어봤다. 정용재 PD는 이이백·신은주 PD와 함께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큐 인사이트'의 '인재전쟁'을 연출한 뒤 책으로도 펴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2026학년도 대학입시 정시 전형이 진행 중인 지금, 그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다큐멘터리에서 격투 로봇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며 느낀 공포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의 유니트리(Unitree)라는 회사에 직접 가봤습니다. 로봇 권투대회 영상이 화제가 됐던 직후였는데, 현장에 가보니 또 새로운 기술이 개발돼 있더라고요. 업계가 하루하루 발전하는 속도감이 느껴졌습니다.
직접 봤을 때 그 로봇은 무쇠처럼 단단해서, 손으로 쳐도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방송적으로 재미를 위해 한 대만 맞아보겠다고 했는데, 뼈가 부러질 수 있다며 만류하더군요. 키가 1미터 정도 되는 로봇인데, 성인 남성 두 명이 들어도 버거울 정도로 무겁습니다. 눈앞에서 현란한 주먹을 날리는 걸 보는데, 통역사와 촬영 감독까지 모두 긴장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공포를 느꼈습니다.
모두 숨이 멎은 것처럼 말을 잃어서 그 넓은 공간에 적막이 흘렀어요.
-그나마 통제 가능한 요소는 없었나요?
현재로서는 배터리 문제 정도입니다. 동작을 한 번 하면 발열이 있어서 잠시 쉬어야 합니다. 약간의 딜레이가 존재하죠. 하지만 그것도 곧 해결될 문제라고 봅니다. 이 발열 문제를 잡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핵심 기술은 2차전지로 이어지는군요.
맞습니다. 흔히 2차전지라고 하면 전기차를 떠올리지만, 사람을 가격할 수 있는 로봇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기술은 군사·안보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상상을 조금만 확장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인재 선택 문제도 연결된다고 보셨습니다.
매년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지원은 더 심화되고 있고,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 치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로 상징되는 메디컬 계열에 지원하는 흐름은 고착화됐습니다. 이미 의대에 합격하고도 더 높은 순위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연 이런 현상이 정상적인지 묻게 됩니다.
이공계 기피라는 말은 90년대 후반부터 신문에 등장했던 표현입니다. 다만 지금은 그 속도와 강도가 다릅니다. 과거에는 전초적인 현상이었다면, 지금은 가속화되고 고도화됐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개인의 생애 주기 측면에서도 이공계 기피와 의대 진학을 위해 학생과 가족의 모든 역량이 투입되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고 봅니다.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사회적 인식을 논하기 전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보상 구조입니다.의사의 보수와 공학자, 연구자의 보수 격차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습니다. 예전에는 공대를 나와 성공한 롤모델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인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와 의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와 영화, 드라마들을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찾을 수 있어요. 지금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고요. 그 작품들 속에서 의사는 일도, 사랑도 잘하는 존재로 멋있게 나오는 경우가 많죠.
'나는 솔로' 등의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의사를 비롯한 메디컬 종사자가 출연하고 자기소개를 하면 '의느님 등장' 같은 자막과 함께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흐르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도 멜로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려집니다.
드라마 속 의사들은 좋은 집, 좋은 차, 아름다운 옷과 함께 하고요. 그런데 제가 취재를 다니면서 만난 공학자, 엔지니어들이 제게 그래요. 아니 왜 미디어에서 공학자들은 다 어두운 곳에서 술이나 라면 같은 것들과 함께 하고 있고, 범죄에 연루되어 있냐고 씁쓸하게 웃으며 묻더군요.
실제로 공학도를 매력적으로 다룬 작품은 벌써 26년 전 작품인 '카이스트' 드라마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고요.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공대생 성공 사례 롤모델들도 이미 50대인 상황입니다.
공학계의 새로운 롤모델을 찾고 이들의 연구 등을 조명하는 콘텐츠의 생산이 필요해요.
-중국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중국에는 공학을 전공한 억만장자 창업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딥시크'를 창업해 중국 부호 10위 안에 오른 1985년생 량원펑 같은 인물뿐 아니라, 그 아래 단계의 성공 사례도 매우 많습니다. 공대를 선택해 혁신을 이루면 기회가 주어진다는 믿음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그런 롤모델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예 중국 정부 차원에서 공학자들의 생애주기별로 지원 제도를 운영하는 점도 인상 깊고요. 연령대에 맞춰서 공학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중국 정부가 움직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 중국 내에서 학원가로 불리는 지역과 교육열이 강한 부모들이 중국 내 명문대 공대에 진학시키는 것을 더 목표로 삼게 되고, 학생들도 그것에 맞춰 공부하는 분위기가 강해지죠.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요?
우리 정부가 공학계 석학을 지정하는 국가과학자 제도를 만드는 등 공학 지원을 위해 움직이는 방향성 자체는 반갑습니다. 하지만 몇몇 석학에게 보상을 주는 것만으로 청소년들의 선택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결국 일자리가 늘어나야 합니다. 공학자들이 노력에 비례해 보상받을 수 있는 일터, 그리고 그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남아 있을까요?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기술 기반과 K컬처라는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동남아, 중동, 동유럽처럼 기술 수요는 있지만 정치적·문화적 부담이 낮은 시장을 적극적으로 넓힌다면, 미국과 중국 못지않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인재 문제는 미래 생존의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세계 기술 패권 전쟁에서 밀리면 미래는 없습니다. 한 분야에만 인재가 몰리는 구조는 전체적인 쇠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이 존중받고, 특히 공학자가 됐을 때 분명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호를 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인재전쟁의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학원가로 유명한 서울 대치동에서 초중고를 모두 졸업한 선배의 입장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의대 진학을 위해 애쓰는 친구들에게 "공대로 가라"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의대 말고 공대를 지원하라고 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일 수도 있고요. 다만 중요한 것은 행복입니다. 제가 취재를 하면서 만난 수 많은 이들 중에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인재'는 없었어요.
정말 좋아서, 흔히 말하는 안광이 눈에서 반짝이는 이들이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었고요. 그러나 흔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평가 받는 전문직 중에 '그냥 의대에 가라니까 갔고, 하라니까 일을 하고 있는' 이들도 더러 만났습니다.
둘 중 누구의 삶이 더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시기에 본인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살피는 시간을 꼭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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