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 |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이 9일(현지 시각) 막을 내렸다. 올해 CES에는 전 세계 수천 기업이 첨단 제품과 기술을 경쟁적으로 공개한 가운데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더 이상 미래의 얘기가 아닌 현재의 일상이 되었음을 선언했다. 특히 AI가 모든 테크 제품과 서비스에 결합하고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피지컬 AI’ 시대로 접어드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보여줬다. 한편에선 미국 제재로 주춤한 듯 보였던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앞세워 ‘테크 굴기(屈起)’를 뽐내며 어느 때보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국내 최고 산·학·연 전문가들은 이번 CES를 어떻게 평가할까. 라스베이거스 현지에서 혁신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로봇공학 전문가인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과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인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 AI 분야 최전선에 뛰는 임우형 LG AI연구원장이 한자리에 모여 대담을 나눴다. 이들은 ‘모든 기술·일상에 스며든 AI’ ‘AI와 더불어 살아가는 적응의 시대’를 CES 2026의 키워드로 꼽았다.
◇“모든 기술이 AI를 품는다”
-올해는 피지컬 AI라는 개념이 가장 주목받았다.
윤지웅 “개막 때부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AI가 모든 것의 기본이 됐고, 모든 곳에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험실에서 벗어나 실제 손에 잡히는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점을 맞고 있다. 이번 CES는 AI가 모빌리티·로보틱스·헬스케어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돕는 분야까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을 보여줬다.”
현대차는 CES 2026에서 미국 자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공동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 실물을 처음 공개했다./뉴스1 |
김영오 “이번 CES는 피지컬 AI의 일상화를 확인한 자리였다. 앞으로 인류가 이런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임우형 “모든 제품이 지능을 가지게 됐다는 걸 느꼈다. 예전 AI는 단순한 자동화 정도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기본이 됐다. 먼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다.”
-AI 개발 경쟁이 AI 응용 전쟁으로 확대된 셈인데.
오상록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늘 ‘끝판왕’이라 착각하는데, AI는 이제 시작으로 봐야 한다.”
임우형 “(피지컬 AI 같은) AI 응용 흐름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이다. 단순한 적용을 넘어, 산업별로 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AI 응용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김영오 “(미국 농기계 회사인) 존 디어의 자율 농기계처럼 지금까지 응용이 미진했던 분야들이 앞으로 AI로 환골탈태하는 사례가 차고 넘칠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기술이나 업체는.
오상록 “중국의 로봇 업체 엔진AI다. 플랫폼 완성도가 인상적이었다. 보행이나 점프 동작 성능도 뛰어나 보였다. 수년에 걸친 중국 정부의 육성 정책 덕에 이런 업체까지 자체 하드웨어 플랫폼을 개발·보유한다는 점에 놀랐다. 다만 시연을 마친 로봇이 갑자기 엉뚱한 동작을 하는 것을 봤는데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하드웨어만큼은 아닌 것 같다.”
김영오 “로봇 손동작이 정교해진 게 인상적이었다. 미국 AI 로봇 스타트업 다이나(Dyna)의 빨래 개는 로봇, LG전자의 수건 개는 로봇, 싱가포르 샤르파(Sharpa)의 바람개비 접는 로봇이 눈에 띄었다.”
윤지웅 “대형 언어 모델(LLM)과 비전(시각) AI, 음성 AI를 결합해 냉장고 같은 가전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중국 기술 보며 섬뜩해져”
-중국은 913사가 참가했다. 평가한다면.
오상록 “10년 전 중국 업체들은 대놓고 한국 제품을 베껴서 내놨다. 지금은 우리가 중국이 무슨 기술을 전시했는지 궁금해서 부스를 찾는다. 20년 전 일본 소니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를 차지했고, 삼성전자·LG전자가 그 자리를 이어받더니 이제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섬뜩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도 중국 기술력을 인정해야 한다.”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의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 부스에서 로봇이 격투 시연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김영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중국 기술은 위협적이다. 특히 이번 CES에서는 중국 업체의 모빌리티 쪽 공세가 거셌다. (자율주행·로봇에 사용되는) 라이다 같은 센서 기술들을 기반으로 AI와 엮은 중국 제품들이 이번 CES에 크게 늘었다.”
윤지웅 “우리와 기술 격차는 보이지 않았다. 경쟁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어떤 것에 더 집중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중국이 로봇 물량 공세를 펼쳤다.
오상록 “CES를 10번 이상 찾았는데 엄청난 질적 성장을 이뤘다. 기술력이 바탕이 되지 않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이 놀랍다. 중국 휴머노이드를 보면서 한국이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하는 절실한 필요성을 느꼈다.”
임우형 “많은 중국 기업이 휴머노이드와 정교한 로봇 손 기술을 선보였다. 보행이나 물체를 집는 동작이 자연스럽고 유연해졌다. 하드웨어 측면은 괄목할 만큼 성장한 것 같다. 다만 두뇌에 해당하는 AI 기술과 결합은 과도기에 있다고 본다.”
◇“국내 제조AI 전환 서둘러야”
-피지컬AI 분야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오상록 “이번 CES에서는 오픈AI의 챗GPT에서 시작된 AI 충격이 빠른 속도로 다양한 형태로 제품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린 제조업의 오랜 경험과 자산이 있으니, 피지컬 AI로 혁신해 한국만의 장점을 살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
김영오 “한국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8%나 차지하지만, 부가가치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0% 선밖에 안 된다. 10대 수출 품목도 10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 ‘제조 AI 전환(Manufacturing AX)’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임우형 “피지컬 AI는 휴머노이드 같은 범용 로봇뿐만 아니라 제조·물류·모빌리티 등 특화된 영역에서 현실적인 해답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가전·반도체·배터리 등 다양한 산업에서 피지컬 AI 기술을 내재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기업의 대응 전략은
윤지웅 “한국의 다양한 지자체, 공공기관이 지원하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참가한 것은 의미가 있다. 꾸준한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재 양성이고,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지금도 규제로 혁신이 좌절되는 사례가 수도 없이 나오고 있다.”
김영오 “CES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 사이에서 한국의 방향을 돌아보게 됐다. 먼저 그들이 못 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모두 머리를 맞대 전략적 로드맵을 짜야 한다.”
임우형 “한국의 작은 기업들도 하나하나 보면 우수한 기술이 있고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기술이 많다. 이들을 어떻게 잘 알리고 더 의미 있는 성과로 연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피지컬 AI
기존 AI가 컴퓨터 안에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명령한 대로 그림을 만드는 데 그쳤다면, 피지컬 AI는 로봇이나 기계의 몸을 빌려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AI를 말한다. 물리 법칙을 학습해 사람처럼 물건을 집거나 장애물을 피하는 등의 복잡한 작업을 수행한다.
[라스베이거스=유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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