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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원 구속 막은 판검사… 그들이 남로당 세포였다

조선일보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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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법조계 남로당 세포 축출한
1949년 법조 프락치 사건
일러스트=한상엽

일러스트=한상엽


1948년 10월, 여순 사건 이후 국군에 침투한 남로당 세포를 축출하는 ‘숙군(肅軍)’이 시작됐다. 이듬해 5월, 국회에 침투한 남로당 세포를 검거하는 ‘국회 프락치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해 7월, 국회 프락치 사건 수사 과정에서 서울지방검찰청 차장검사 김영재가 남로당에 가입하고 주요 수사 정보를 남로당에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영재는 경성제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일제강점기 때부터 검사 생활을 이어갔던 ‘엘리트 검사’였고, 구속 당시 ‘서울지검 이인자’였다.

수사를 주도한 ‘사상 검사’ 오제도와 선우종원에게 김영재는 “선배 검사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동료 법조인의 권유로 ‘정부 수립 전’인 1946년 2월 남로당에 입당해 세포 회합에 5~6차례 참석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1949년 8월, 김영재 차장검사는 ‘적색 변호사’ 6명과 함께 기소됐다. ‘제1차 법조 프락치 사건’이라 불린 이 사건은 이후 4명의 ‘적색 변호사’가 추가로 기소돼, 피고인이 검사 1명, 변호사 10명으로 늘어났다. 피고인들은 모두 좌익 법조인 단체 ‘조선법학자동맹(법맹)’의 핵심 인물이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은 중앙청 꼭대기에 인공기를 내걸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은 중앙청 꼭대기에 인공기를 내걸었다.


‘제1차 법조 프락치 사건’ 공판(재판장 이봉규, 담당검사 선우종원)이 진행 중이던 1949년 12월, 서울지검은 김진홍·김두식 등 현직 판사 4명과 이정남·이사묵 등 현직 검사 2명을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 판검사 6명은 좌익 사건 피고인들의 공판 동향을 남로당에 보고하고, 동료 판검사에게 남로당 가입과 활동을 권유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송문현 재판장에게 배당된 이 사건은 ‘제2차 법조 프락치 사건’으로 불렸다.

1949년 11월 24일 시작된 공판에서 피고인들은 모두 남로당 입당과 법맹 가입 사실을 시인했다. 또한 200여 명 법맹 회원이 매주 야회(夜會)를 열었으며, 남로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조직원들이 체포·구속됐을 때는 변호사로서 적극적으로 변론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가입했을 당시 남로당은 합법 정당이었고, 정부 수립 이후에도 남로당 전체가 체제 전복 세력이 아니라 일부 과격분자가 폭력을 썼을 뿐이었다고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김영재는 남로당과 법맹 가입을 인정했음은 물론 “북로당 가입 권고를 받아 가입 원서를 쓴 사실은 있지만, 입당되었는지는 모른다”고 진술했다. 또한, “적극적으로 좌익 활동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 다만, 남로당원의 구속을 인정상 돌봐준 적은 있다” “정부 수립 이후 남로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조직책인 변호사에게 탈당 의사를 전달했다” “법맹을 탈퇴하지는 않았으나 야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저절로 탈퇴되는 것으로 알았다” 등 궤변을 늘어놓다가 “지금은 잘못을 깊이 깨닫고 있다”고 눈물을 흘렸다.

‘제1차 법조 프락치 사건’ 재판부가 결심(結審) 이후 선고 기일 연기를 거듭하던 사이 ‘제2차 법조 프락치 사건’ 선고가 먼저 나왔다. 1950년 3월 21일 송문현 재판장은 국보법 시행 이후까지 남로당 활동이 입증된 서울지법 김진홍 판사에게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판검사 피고인 5명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남로당에 가입한 부분은 국보법 제정 이전의 행위이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의거 국보법을 적용할 수 없다. 군정청 포고령 제2호 위반죄는 정부 수립 이후 일반사면령으로 사면됐기 때문에 역시 적용할 수 없다. 남로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행위는 피고인들의 주장처럼 변호사 수임료로 받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나흘 후인 25일 이봉규 재판장도 ‘제1차 법조 프락치 사건’ 판결을 내렸다. 법맹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변호사 4명에게 구형인 징역 8~12년에 훨씬 못 미치는 징역 2~4년이 선고됐고, 3~8년이 구형됐던 변호사 5명에게는 집행유예, 1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수사 검사에게 ‘검사 프락치’ 명단을 넘겨 수사에 적극 협조한 김영재는 함께 구속된 변호사보다 죄질이 나빴음에도 정상 참작으로 2년 구형을 받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군인·국회의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운 형량이었다.

수사를 주도한 오제도 검사는 “지식층인 판검사·변호사에게 일반인보다 가벼운 형량을 선고한 것은 언어도단이다. 돈 있고, 백 있는 자에 대해서 양형을 가볍게 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선우종원 검사는 “피고인들은 국보법 시행 이후에도 남로당이 반국가 단체임을 알면서도 탈당한 사실이 없으며, 검거되기 전 과거 입당한 사실을 고백하고 전향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형사소송법 제정(1954) 이전이었던 그 시대에는 일본 형사소송법을 의용(依用)해 1심에서 무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피고인이라도 검사가 항소하면 구속된 채 2심 재판을 받아야 했다. 그 때문에 보석 허가를 받은 판사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채 6·25전쟁을 맞았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이후인 6월 29일 형무소에서 풀려난 김영재는 인민군 치하에서 ‘검찰 자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국군의 서울 수복 이후 인민군을 따라 월북했다. 나머지 피고인들도 대부분 납북되거나 월북했다.

1998년 2월 18일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와 조순 총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전 명예총재의 부친 이홍규 검사, 조 전 총재의 숙부 조평재 변호사가 '법조 프락치 사건' 때 구속됐던 전력이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 '검증 대상'으로 떠올랐다. 논란은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사상 검사’ 선우종원이 “그들 모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보증함으로써 종식됐다." /조선일보DB

1998년 2월 18일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와 조순 총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전 명예총재의 부친 이홍규 검사, 조 전 총재의 숙부 조평재 변호사가 '법조 프락치 사건' 때 구속됐던 전력이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 '검증 대상'으로 떠올랐다. 논란은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사상 검사’ 선우종원이 “그들 모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보증함으로써 종식됐다." /조선일보DB


역사책에서도 잘 거론되지 않는 ‘법조 프락치 사건’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검증’ 과정에서 뜬금없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회창 후보의 부친 이홍규 검사는 1950년 3월 ‘법조 프락치’로 몰려 구속됐지만 가혹한 고문에도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별건인 수사 중 피의자를 구타했다는 ‘독직 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보석으로 풀려나 1심 공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6·25전쟁이 발발했고, 1·4 후퇴 이후 부산에서 공소 취소 처분을 받고 검사로 복귀해 1965년까지 검사로 봉직했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 후보는 6·25전쟁 때 납북된 부친 이충영 변호사가 월북한 것이 아니냐는 경쟁 후보 캠프의 공격을 받았다. 법맹 초대 회장을 역임했지만, 일찌감치 전향한 덕분에 ‘제1차 법조 프락치 사건’ 때 구속됐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된 조평재 변호사의 조카가 서울시장직을 사퇴하고 대선전에 뛰어든 조순 후보였다. 보수 후보들 사이에서 벌어진 검증 공방은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사상 검사’ 선우종원이 “그들 모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보증함으로써 종식됐다.


<참고 문헌>

김두식, 법률가들, 창비, 2018

선우종원, 사상검사, 계명사, 1992

오제도, 추적자의 증언, 희망출판사, 1969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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