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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가르치는 국어 선생님… “행복한 교사가 세상을 바꿉니다”

조선일보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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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명문대·의대 입학만 좇는 세상
교사와 학생 모두 행복해져야
신문 새 책 소개란 귀퉁이에서 봤다. 특성화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헬스를 지도하는 선생님 이야기.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알아내 춥디추운 날 그를 만났다. 대구 영남공업고등학교 지한구(44) 교사.

헬스 이야기부터 물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게 하는 돌파구가 없을까 고민하다 ‘자기성장 프로젝트’라는 교육청 공문을 봤어요. 게임⸱요리⸱당구⸱실용음악 등 학생 친화형 항목 중 헬스를 골라 신청해 선정됐습니다. 몸짱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 욕망을 노렸죠.” 목표와 성과는? “보디프로필 만들기에 이어 보디빌딩대회 참가였습니다. 13명을 추려 100일 동안 지방 빼기, 식단 관리, 근육 극대화를 밀어붙였습니다. 고등부 1위를 거머쥐고, 지도교사 부문에서도 3위를 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감을 얻은 게 소득입니다.”

왜 교사가 됐을까. “농대 임학과 출신입니다. 1학년 때 군대 가서 논산훈련소 조교로 2년 2개월 꼬박 근무했죠. 신병들에게 제식훈련⸱정신교육⸱사격술 가르치는 게 보람 있었습니다.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입니다.”

그러나 교사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영어는 돈이 들 것 같고 수학은 취미가 없어 국어를 복수 전공했다.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따자 교사 자격이 주어졌다. 임용고시를 쳤는데 2년 연거푸 낙방했다. 대구⸱경북 일원 20여 개 사립 중·고교에 지원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7년 연애한 간호사 애인 볼 낯이 없었다. 박사 과정에 적을 두자 특성화고와 과학고 두 곳에 기간제 교사로 붙었다. 존경하는 고교 은사께 자문을 구했다. “어디를 가야 할까요?” “특성화고에 부임해야 자네 쓰임이 빛날 걸세. 학생들에게 지식만을 주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니지 않은가.” 그 말씀에 따랐다.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지 10년 만에 정식 교사가 됐고, 어느덧 15년 차에 이른다. 기다려준 간호사가 지금 아내다.

대학 입시, 의대 쏠림, 특목고⸱자사고 동향이 교육 뉴스의 전부인 양 치부되는 세상에서 특성화고 학생은 어떤 존재일까. “학생들이 소외당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공부 못해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여전하고요. 학부모들도 보내길 꺼립니다. 그러나 공대가 중요하면 특성화고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한 거 아닐까요? 특성화고에 대한 지원이 참 많은데 다들 잘 모르세요. 방과후학교 비용도 무료고, 그 외 국비 지원이 많습니다. 공업계 특성화고 나와서 삼성도 갈 수 있고요. 이제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명문대 입학률만큼 특성화고는 취업률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럼요. 아쉬운 건 취업했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에요. 대기업과 임금 격차가 심하거든요. 이참에 중소기업 현장 실습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실습⸱인턴 나온 학생한테 박스 접기, 청소, 집기 정리만 시켜요. 아이들이 실망하는 건 당연하죠. 교육⸱훈련에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어요.”


최근 학교에서는 폭력 이슈가 뜨겁다. “예전에는 때린 아이와 맞은 아이를 앉혀놓고 설득하곤 했죠.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한 경우는 드물었고요. 요즘은 예외 없이 법대로 합니다. 융통성이 전혀 없고 매뉴얼대로 해야 해요. 실제 사례로, 교사가 수업 시간에 대놓고 자는 학생의 등을 톡톡 건드리며 일어나라고 했어요. 왜 때리느냐며 학생이 반발하곤 뒷문을 걷어차고 학생부 교사에게 신고했습니다. ‘사안 접수’. 이런 경우 등장하는 용어예요. 대화⸱설득은 생략되고, 해당 교사는 2개월 동안 교실 출입금지. 경찰서에 불려가고 구청에서 조사도 나옵니다. 동료 교사들한테는 눈총받기 일쑤죠. 무력하고 허탈합니다. 2년간 학폭 담당 교사를 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계획이나 꿈은? “전문직은 50대 정도면 연륜과 관록으로 인정받잖아요. 교사는 반대예요. 40대 중반만 되면 학생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학생들이 ‘할매’ ‘할배’라고 놀리기도 해요. 정년 마치는 선생님이 급격히 줄었어요. 학교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는 게 목표입니다. 만에 하나, 학교를 그만둔다면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시설에서 봉사하고 싶습니다. 헬스도 가르치고요(웃음).”

‘행복한 교사가 세상을 바꾼다’. 시대의 현자(賢者) 틱낫한 스님의 책이다. 교실의 사랑과 평화는 교사로부터 온다는 가르침이다. 학생의 권리를 지나치게 좇다 교사가 불행해지고, 그러다 교사들이 떠나고…. 결국 둘 다 불행해지는 잘못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때다. 국어 교사 지한구. 그의 맑고 씩씩한 웃음 속에서 희망을 본다.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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