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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와 전장 누빈 여덟 마리 名馬

조선일보 김혜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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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혜원의 박물관 산책]
‘팔준도첩’ 중 ‘용등자’
'팔준도첩' 중 ‘용등자(龍騰紫)’, 42.5 x 34.5cm /e뮤지엄

'팔준도첩' 중 ‘용등자(龍騰紫)’, 42.5 x 34.5cm /e뮤지엄


2026년은 ‘말의 해’다. 말에 관한 이야기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태조 팔준(八駿)’은 이성계와 함께 전장을 누빈 여덟 마리 말을 가리킨다. 이들의 이름은 횡운골(橫雲鶻), 유린청(遊麟靑), 추풍오(追風烏), 발전자(發電赭), 용등자(龍騰紫), 응상백(凝霜白), 사자황(獅子黃), 현표(玄豹)다. 말의 빛깔과 빠르기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창업주의 위업을 강조하는 태조 팔준의 서사는 세종대에 성대하게 펼쳐졌다. ‘용비어천가’ 제70장은 당나라 태종이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하고자 할 때 여섯 준마가 나온 것처럼, 하늘이 낸 용맹함과 지혜를 지닌 태조가 어지러운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할 때 팔준이 때맞춰 나왔음을 노래한다. 세종은 당대 최고 화가인 안견에게 두 차례에 걸쳐 팔준 그림을 그리게 했다. 문신들에게 팔준에 대한 시문을 짓도록 했고, 박팽년·성삼문·신숙주·서거정과 같은 당대 최고 문장가들이 이에 호응했다.

조선 전기의 ‘팔준도’는 전하지 않지만, 조선 후기 작품은 일부 전한다. 그중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팔준도첩(八駿圖帖)’이다. 이 화첩은 경종(재위 1720~1724)과 헌종(재위 1834~1849) 사이에 제작됐고, 여기 전하는 ‘팔준도’는 숙종 시기에 그려진 그림을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와 연산군이 태조 팔준을 모방해 각각 자신의 열두 마리 준마, 네 마리 준마에 대한 서사를 만들고자 했다면, 숙종은 태조 팔준을 소환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숙종이 ‘팔준도’ 제작을 명하게 된 경위를 적은 글에 따르면, 안견의 그림은 전쟁으로 사라졌기에 사대부 집안이 소장한 그림을 참고해 그렸다고 한다.

‘팔준도첩’에서 팔준은 마치 증명사진처럼 한 폭에 한 필씩 그려졌다. 화면 한편에는 글귀가 보이는데, 여기에는 말의 이름, 빛깔, 산지, 활약한 곳과 부상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한 그림을 예로 보면, 수려한 모습의 붉은 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로 풀이 낮게 자란 들판이 보인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용등자, 자색(紫色)이며 갈기와 꼬리가 검다. 단천(端川)산이다. 해주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 탔다. 뒤 왼쪽 넓적다리에 화살을 한 대 맞았다.”

그림 속 글귀는 ‘용비어천가’ 제70장의 주해에 나오는 팔준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글귀를 읽으면 여러 전장을 치열하게 누비는 전투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림 속 말은 안장·고삐가 없는 자유로운 모습이며 상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림의 배경에는 특정한 때와 장소를 암시하는 요소도 없다. 역사적 구체성보다는 이상화와 시각적 윤색이 짙은 그림이다.

[김혜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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