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칸치킨의 창립자 윤종계 회장이 2020년 8월 케이블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더블럭’에 출연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유 퀴즈 온 더 튜브’ 영상 캡처 |
대한민국 외식 산업 역사에서 1980년대는 ‘치킨 혁명’의 시기라고 불릴 만하다.
그 중심에는 대구 효목동의 작은 시장 골목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맛의 원형을 만들어낸 맥시칸치킨의 창립자 윤종계 회장이 있다.
1985년 윤 회장이 만든 맥시칸치킨은 ‘맵고 시고 달콤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멕시코에서 딴 ‘멕시칸치킨’과는 다르다.
오늘날 한국 치킨이 전 세계적인 ‘K-푸드’의 대명사가 된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그의 연구 정신과 파격적인 배려가 담긴 특허 미등록 일화를 마주하게 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980년대 국내 치킨 시장은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갓 튀겨냈을 때의 바삭함은 잠시뿐, 치킨이 식으면 튀김옷이 딱딱해지고 닭 특유의 비린내가 올라오는 것이 고질적인 문제였다.
치킨집을 운영하던 윤 회장은 손님들이 남기고 간 치킨 조각들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식어도 맛있는 치킨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이 양념치킨 탄생의 시작이었다.
윤 회장은 수개월을 소스 연구에 매달렸다. 고추장, 마늘, 양파 등 한국적인 식재료를 수없이 조합했지만, 처음에는 소스가 금방 타버리거나 맛이 겉도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돌파구는 우연한 곳에서 찾아왔다. 동네 할머니의 ‘물엿을 한번 넣어보라’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물엿의 점성 덕분에 치킨에 소스가 잘 점착되면서 양념치킨 특유의 달콤한 감칠맛이 탄생했다.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양념치킨 소스 특허권 문제다.
윤 회장이 처음부터 특허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실상은 조금 더 복잡하고 드라마틱하다.
윤 회장의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자기 명의로 특허를 가로채 등록하려 했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변리사 자문으로 직원 월급명세서 등 입증 자료를 제출하면 3개월 안에 특허를 되찾고 해당 직원을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윤 회장은 법적 보복 대신 관용을 택했다.
직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특허 포기 의사를 밝히자, 윤 회장도 독점적인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윤 회장은 2020년 케이블채널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서도 당시의 상황을 전한 바 있다.
만약 윤 회장이 특허권을 휘둘러 로열티를 징수하거나 타 브랜드의 판매를 막았다면, 오늘날 수만개에 달하는 대한민국 치킨 전문점과 다채로운 양념 브랜드의 상생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통 큰 결단은 개별 기업의 이익을 넘어 한국 치킨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치킨의 단짝인 ‘치킨무’도 윤 회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치킨을 먹으면 목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나는 점에 착안, 무와 오이에 식초와 사이다를 섞어 곁들인 것이 지금의 치킨무로 발전했다.
이로써 ‘양념치킨과 무’라는 한국식 치킨 문화의 표준이 만들어졌다.
평생을 치킨 연구에 바친 윤 회장은 지난달 30일,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단순히 달콤매콤한 소스 한 그릇이 아니었다.
기술을 독점하기보다 공유함으로써 산업 전체의 번영을 이끈 장인 정신, 그리고 고객의 작은 불편함도 놓치지 않았던 세심한 배려였다.
유족은 부인 황주영씨와 아들 윤준식씨 등이 있다. 고인은 지난 1일 발인을 거쳐 청도대성교회에 안장됐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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