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지금까지 약 200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에는 ‘감자 전래 200주년’ 기념 행사도 열렸다. 그러나 사실 감자는 그보다 최소한 50년 전인 1774년 무렵으로 전래 시기가 대폭 올라가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사진·전 문체부 장관)는 최근 출간된 학술지 ‘한국사학보’ 101호에 실은 논문 ‘김동인의 감자는 고구마인가?’에서 이같이 밝혔다.
‘감자 200년’의 근거는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중 ‘1824년에 감자가 들어왔다’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최 교수는 기록을 살펴본 결과 “그것은 감자가 함경도에서 한양으로 온 시기로, 한반도 전래 시점은 더 올라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감자 200년’의 근거는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중 ‘1824년에 감자가 들어왔다’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최 교수는 기록을 살펴본 결과 “그것은 감자가 함경도에서 한양으로 온 시기로, 한반도 전래 시점은 더 올라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영조 때 문신 신광수의 1774년 시집 ‘관서악부(關西樂府)’에 실린 시에 주목했다. ‘희고 질긴 강계 국수 맛도 좋은데 은쟁반에 들고 와서 덧국 권하네’란 구절이다. 이것은 강계산 (産) 메밀로 만든 냉면이나 막국수로 생각됐지만, 그렇다면 ‘흰 국수’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강계는 밀이 잘 자라는 지역도 아니다.
최 교수는 “그 흰 국수는 감자농마(녹말) 국수일 수밖에 없고, 국경 지대인 강계에서는 1770년대에 이미 감자를 재배하고 식용화해 국수를 삶아 먹었던 것이 된다”고 했다.
논문에서 최 교수는 김동인 소설 ‘감자’에 나오는 ‘감자’가 ‘사실은 고구마를 지칭하는 것이었다’는 최근 설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1925년 발표 당시의 내용, 1935년 단행본 표지의 감자꽃 그림, 감자의 실제 수확 시기가 소설처럼 가을이라는 점 등을 볼 때 감자가 맞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감자가 빈민과 빈곤의 상징처럼 된 것에 부담을 느낀 김동인이 나중에 고구마라고 둘러댔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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