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존중받아야 하는 국회 입법권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을 훼손하거나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까지 제대로 된 ‘법(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당이 지난달 강행 처리한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법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외부 인사들이 전담 재판부 판사 추천에 관여하는 안을 추진하다 위헌이란 지적이 나오자 법원 판사회의에 재판부 구성에 대한 전권을 주는 쪽으로 내용을 수정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군사법원만을 특별법원으로 정하고 있다. 헌법에 근거 없이 전담 재판부 같은 특별법원을 법률로 만드는 것 자체가 위헌이다.
이뿐 아니다. 민주당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관 인사를 담당할 별도 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법을 왜곡해 적용했다는 이유로 판검사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왜곡죄’ 법안 처리를 공언한 상태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 헌법 위반이고, 법 왜곡죄도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강요하는 쪽으로 악용될 수 있어 위헌 소지가 크다.
김지호 기자민주당이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있다. |
민주당은 외부 인사들이 전담 재판부 판사 추천에 관여하는 안을 추진하다 위헌이란 지적이 나오자 법원 판사회의에 재판부 구성에 대한 전권을 주는 쪽으로 내용을 수정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군사법원만을 특별법원으로 정하고 있다. 헌법에 근거 없이 전담 재판부 같은 특별법원을 법률로 만드는 것 자체가 위헌이다.
이뿐 아니다. 민주당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관 인사를 담당할 별도 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법을 왜곡해 적용했다는 이유로 판검사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왜곡죄’ 법안 처리를 공언한 상태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 헌법 위반이고, 법 왜곡죄도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강요하는 쪽으로 악용될 수 있어 위헌 소지가 크다.
민주당이 이런 법안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건 대법원이 작년 5월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일선 법원이 비상 계엄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후다.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했다고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압도적 의석을 무기로 ‘법’을 이용해 벌이는 독재 행태다.
이런 행태에 제동을 걸라고 만든 기관이 헌법재판소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헌재의 위헌 법률 심판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헌법(111조1항)이 법률 등의 위헌 여부는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만 심판할 수 있다고 규정한 데서 비롯된다. 즉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서 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 여부가 문제가 됐을 때 법원이 직권으로 혹은 소송 당사자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고 청구해야 위헌 여부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이다. 재판이 걸려 있어야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이 방식을 ‘구체적 규범 통제’라고 한다.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법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은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하겠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관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위헌 여부를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이 걸려 있지 않은 경우엔 위헌 법안이 방치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초 민주당이 통과시킨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보자. 통제 구역 내 무인 비행기구의 비행을 금지한 이 법안은 사실상 대북 전단 살포를 우회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앞서 헌재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를 부활시키는 내용을 항공안전법에 넣어 통과시킨 것이다. 헌재 결정을 무시하는 것으로 명백한 위헌이다.
하지만 누군가 대북 전단을 날려 이 법안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으면서 위헌 법률 심판을 신청하지 않는 이상 이 법안의 위헌성을 따질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위헌 여부를 따지려면 누군가 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결국 위헌 법안이 방치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선 ‘추상적 규범 통제’를 도입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도 헌재가 시행된 법에 대해선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 제도다. 이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연방의회 의원의 4분의 1’을 위헌 법률 심판 청구권자로 정하고 있다. 다수당이 의석을 무기로 위헌적 법률을 통과시켜도 소수당이 추상적 규범 통제 절차에 따라 바로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수당이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물리적 충돌을 빚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독일에선 이 제도가 정치적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헌재의 위헌 심사 대상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항공안전법 개정안처럼 위헌이지만 재판이 걸려 있지 않은 법안에 대해서도 일정 수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수당도 법안을 만드는 데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수당 횡포에 대한 강력한 견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입법 절차 하자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지금도 다수결 원칙 위반 등이 법률의 위헌 사유가 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위헌 여부를 다투기가 마땅치 않다. 재판이 걸려 있거나 기본권 침해가 있을 때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는데, 국회의원이나 국가기관 등은 그런 기본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고, 재판이 전제가 된 사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간 각 정당은 입법 절차 문제가 있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국가기관 상호 간의 분쟁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다퉈왔다. 직접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할 방법이 없으니 우회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헌재가 권한쟁의심판에서 행정 처분 등은 무효로 할 수 있지만, 절차 하자가 있는 법률까지 무효로 결정해 사실상 위헌의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립된 판례나 이론이 없다. 헌재가 그간 국회의 절차상 위법은 인정하면서도 법률을 무효로 보기는 어렵다는 식으로 소극적 판단을 해온 이유다. 헌재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권 시절 통과시켰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해서도 ‘위장 탈당’을 통한 법사위 심사 과정은 위법했지만 법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추상적 규범 통제가 도입되면 절차 위반을 이유로 국회의원들이 바로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소송 남발의 우려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심판 청구권자 범위를 독일과 비슷하게 ‘정부와 광역지자체, 국회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으로 한정하고, 제청 요건도 좁히면 남소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요한데 이재명 정부의 1호 국정 과제가 개헌이다. 다만 그간의 행태로 볼 때 민주당이 먼저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권이 안 하면 헌재라도 나서서 설득해야 한다. 이강국·박한철 전 헌재 소장도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전직 헌법재판관은 “사회적으로도 도입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했다.
정당 파견원처럼 된 재판관 임명 방식도 바꿔야
추상적 규범 통제를 도입하려면 기본 전제가 하나 있다. 헌재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껏 헌재가 보여온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재판관들이 각 정당의 파견원처럼 판단할 때가 적지 않았다. 헌재가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기각하긴 했지만 찬반 의견이 4대4로 갈린 게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이 전 위원장을 취임 이틀 만에 정략적으로 탄핵소추했는데도 진보 성향 재판관 4명은 탄핵에 찬성했다.
이런 상황은 재판관 임명 방식과 무관치 않다. 헌법은 재판관 9명을 대통령·대법원장·국회가 각각 3명씩 지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로 견제하라는 권력 분립의 이상이 담겨 있지만 이념, 정파로 갈려 실상은 그 반대가 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 때는 재판관 9명 중 5명을 진보 성향인 우리법연구회, 민변 출신 등으로 채웠다. 이후 각 정당이 노골적으로 헌재에 자기 편을 심으려 했다. 민주당은 민주당원 같은 성향을 보인 마은혁 판사도 밀어붙였다.
재판관 임명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재판관을 다 국회에서 선출하되 임명 가결 정족수를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정한 독일 헌재의 모델을 검토할 만하다. 가결 정족수를 높여 정치 편향이 강한 후보는 통과하기 힘들게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 정당은 상대도 납득할 수 있는 후보를 찾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개헌 사항인데 추상적 규범 통제를 도입한다면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 규범 통제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은 경우에도 헌재가 위헌 심판을 할 수 있는 제도. 이를 도입한 독일에선 연방정부와 주정부, 국회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이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하면 헌재가 해당 법률이 적용된 재판이 없어도 위헌 심판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반면 우리 헌법은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 적용된 법률의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됐을 때만 헌재가 위헌 심판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를 ‘구체적 규범 통제’라고 한다.
[최원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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