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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2026년 서울에서 1911년 뉴욕을 보다

조선일보 이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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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사건이 던진 질문은
독점에 너그러운 한국 사회가
눈 앞에 온 디지털 독점 시대를
어떤 시스템으로 대응할지였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 2025.12.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 2025.12.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역사는 똑같지는 않지만 닮은꼴로 나타난다” 미국 문학의 거장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이 통찰은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흐르는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모순은 놀랄 정도로 반복된다는 뜻이다.

쿠팡에서 3370만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참사가 벌어졌지만 오늘도 쿠팡의 로켓 배송 트럭은 쉴 새 없이 아파트로 들어가고, 식당마다 쿠팡이츠의 라이더들이 음식을 실어 나른다. 매출과 주가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100여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석유왕’ 존 록펠러와 뉴욕에 본사를 둔 그의 제국 ‘스탠더드 오일’에 관한 사건이다.

상당수 한국인은 쿠팡 사건 이전까지 로켓 배송이나 배달 앱에 대해 “편하고 싸게 이용하는데, 독점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해 왔다. 1900년대 초 미국도 그랬다. 정유 시장 90%를 장악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혁신으로 가격을 갤런당 26센트에서 8센트로 낮췄다”고 강조했다. 사실이었다. 소비자는 기업의 혁신에 환호했다. 하지만 1911년, 미 연방 대법원은 스탠더드 오일을 34개로 쪼개버렸다. 그 조각들이 엑슨모빌, 셰브론 등이 됐다.

가격 혁명을 이끈 기업을 미국 법원은 왜 해체했을까. “독점 기업은 당장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경쟁 시스템이 무너져 결국 소비자 피해를 가져올 것”이란 확신 때문이었다. 록펠러는 막강한 물량을 무기로 철도회사들에 요구했다. “내 석유를 운송할 때는 요금을 깎아주고, 경쟁사 석유를 운송할 땐 요금을 더 받아라. 그리고 우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해라”

뭔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오늘날 쿠팡이 압도적 물류망을 무기로 자사 브랜드(PB) 상품을 밀어주고, 납품업체에 갑질한다는 의혹이 100년 전 록펠러와 닮아 있는 건 우연일까.

최근 당국이 쿠팡에 대해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 문제나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사건만 터지면 그랬듯이 특정인 한 명을 몰아세우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쿠팡 사건이 던진 진짜 문제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가 독점을 강력히 지향하고 있으며, 그 독점의 폐해는 상상 초월이라는 위험성이다. 아마존, 구글, 쿠팡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의 승자를 보라. 데이터가 쌓일수록 네트워크 효과는 강력해지고, 구축된 성벽은 경쟁자 진입을 원천 봉쇄한다.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경제의 구조적 생리다.

한국 사회는 유독 독점에 너그럽다. 압축 성장기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관성이 디지털 시대로 이어진 탓이다. “쿠팡 없으면 불편하다”는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독점이 가져올 ‘선택의 상실’과 ‘시장 생태계의 파괴’를 간과하고 있었다.

아마존이 미국 시장을 장악 후 ‘아마존세(Tax)’라 불릴 만큼 수수료를 올렸듯, 독점이 된 플랫폼은 더 이상 친절하지 않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등이 수수료를 올려도 자영업자들이 속수무책인 현실은 이미 시작된 미래다. 더욱이 한국에선 디지털 독점이 쿠팡, 배달의민족 등 하나같이 외국 기업 손에 맡겨져 있다.


쿠팡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영진의 뻔뻔함을 응징하는 것 못지않게 무소불위의 디지털 독점 권력을 어떤 시스템으로 견제할지 결정해야 한다. 100년 전 미국이 증명했듯이 독점에 대한 규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미국, EU 등도 디지털 독점에 대한 갖가지 대응을 진행 중이다. 우리도 예외여선 안 된다. 자본주의의 진짜 힘은 구글, 애플 같은 기업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선을 넘을 때 가차 없이 제동 걸 수 있는 균형 감각에 있다.

[이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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