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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클래식 음악 앞에 긴장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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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감상해야 할 것 같고
집중해 분석하려는 걱정 크지만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걸로 충분
클래식 음악 앞에서 많은 사람은 먼저 긴장한다. 이 음악을 들으려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 같고, 작곡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구조를 모르면 감상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을 틀어놓고도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제대로 듣고 있나?’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음악을 듣기 전에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고, 감상보다 평가를 먼저 하게 된다. 음악은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 앞에서 자꾸만 뒤처진 기분이 된다.

클래식 음악이 단지 느끼기보다는 먼저 공부해야 할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형식과 구조,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우리의 클래식 음악 감상을 방해한다. 그러다 보니 음악은 점점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공부의 대상이 된다. 음악은 시험 문제가 아니다. 감상엔 정답이 없고,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의 진짜 힘은, 아무 준비 없이도 사람의 감각을 흔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도 사람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게 클래식 음악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우리의 감정은 언제나 이해보다 앞서 움직인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게 더 빠르다. 영화 속 장면이 왜 슬픈지 설명하지 못해도 눈물이 나는 것처럼, 음악도 이유를 묻기 전에 몸이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숨이 느려지거나, 어깨의 힘이 빠지거나,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스며드는 경험. 어떤 때는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나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것은 음악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에게 먼저 닿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음악은 집중하지 않을 때 우리 마음에 더 잘 스며든다. 의자에 앉아 분석하면서 듣지 않아도, 음악이 호흡과 맥박에 맞춰 흐르며 몸의 리듬을 바꾸는 순간이 있다. 발끝에 힘이 빠지거나, 자세가 조금 느슨해지거나, 생각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 순간. 이때 음악은 귀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마치 소리가 공기를 지나 피부에 닿는 것처럼, 감각 전체를 두드린다.

이런 경험은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자주 찾아온다. 대부분 가사가 없기 때문에, 내용을 따라가거나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음악은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거나, 잠시 멈춘 듯한 여백을 만들고, 속도를 늦추며 분위기를 바꾼다. 감정을 급하게 끌어올리지도, 설명하듯 들려주지도 않는다.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는 사이,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마음이 자연스럽게 느슨해진다. 그 순간 우리는 음악을 ‘듣고 있다’기보다, 그 안에 함께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먼저 다가온 감정이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오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곡에 대한 설명을 읽거나, 공연장에서 같은 음악을 다시 들을 때, 예전에 스쳐 지나갔던 감정이 문득 또렷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아, 그래서 그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때의 이해는 음악을 새로 배운다기보다, 이미 지나온 감정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이름 없이 흘러갔던 느낌들이 뒤늦게 자리를 얻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해는 감동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감동을 오래 기억하게 해 주는 방식에 가깝다.


그러니 우선 클래식 음악 앞에서는 조금 더 우리의 몸을 믿어도 괜찮다. 감동의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해도,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음악은 이해의 대상이기 이전에, 반응의 예술이다. 설명보다 먼저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생각의 속도를 낮추며, 감정의 결을 건드린다.

절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음악을 잘 듣는 중이다. 클래식 음악은 그렇게, 지식이 없어도 느낄 수 있고, 이해하지 않아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을 허락하는 것, 판단과 설명을 잠시 내려놓는 것. 그것이 음악과 가장 가까워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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