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독재자들의 소식을 접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국제법과 의회를 무시한 채, 독재자를 생포하겠다는 독단의 정치가 벌어졌다. 미국이 전격 단행한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생포작전 이야기다. 주권국가의 불가침성을 부정하는 독단과, 국내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독단 사이에서 세계가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던 찰나,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밟고도 싱긋 웃던 한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에 빠진 그의 모습은 자못 행복해 보였다. 타인에 무신경한 태연함 속에서 그는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고 있었다.
세계는 점차 핵을 가진 패권국과 패권 도전국들이 주변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타인을 유령처럼 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 두 장면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의식하면서도, 하나의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에 대한 ‘무감각’이다. 해나 아렌트는 이 무감각이 자기 자신과의 내적 대화에 실패할 때 발생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치가 서로 다른 존재들의 복수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그 복수성은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스마트폰 없이는 혼자 있지 못하는 자아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재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만 향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숙의하지 않는다. 대신 결단한다. 선거조작을 결단하고, 전쟁을 결단하고, 비상계엄을 결단한다. 내각과 의회와 상의하지도 않는다. 자기 안에 반대되는 진리를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진리를 안다고 믿고, 자신이 곧 세계라고 여긴다.
세계는 점차 핵을 가진 패권국과 패권 도전국들이 주변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타인을 유령처럼 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 두 장면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의식하면서도, 하나의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에 대한 ‘무감각’이다. 해나 아렌트는 이 무감각이 자기 자신과의 내적 대화에 실패할 때 발생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치가 서로 다른 존재들의 복수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그 복수성은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스마트폰 없이는 혼자 있지 못하는 자아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재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만 향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숙의하지 않는다. 대신 결단한다. 선거조작을 결단하고, 전쟁을 결단하고, 비상계엄을 결단한다. 내각과 의회와 상의하지도 않는다. 자기 안에 반대되는 진리를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진리를 안다고 믿고, 자신이 곧 세계라고 여긴다.
스마트폰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화면은 이런 독재의 달콤함을 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자영업자로서, 부모로서, 학생으로서 우리는 점차 나와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마주하는 시간만큼은 이 복잡한 사태에 직면한 자아를 밀봉한 채, 오로지 그 순간의 나 자신 안에 머물게 해준다.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겠다는 결심만으로도, 나만의 세계는 손쉽게 건설된다.
온갖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화면 속에서 세계에 대한 감각은 점점 무뎌진다. 누군가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생포작전을 트레이닝복 브랜드 소식으로 접했을지도 모른다. 내 알고리즘이 고장난 것인지, 트럼프와 마두로를 소재로 삼은 AI 밈들이 넘쳐난다. 주의를 단숨에 사로잡는 콘텐츠들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질곡의 역사를 이해할 단서를 찾기란 어렵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의 잔해는 말끔히 지워지고, 그 핍진성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는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무신경한 독재는 결국 스스로와 대화하는 데 실패한 자아에 기대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숙의란 본래 ‘이것과 저것을 저울에 달아본다’는 뜻을 지닌다. 새벽에 잠을 깨 스마트폰을 만질지 말지 망설이는 일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숙의의 한 장면이다. 잠결에 문득 비상계엄을 선포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일 역시 철저한 숙의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숙의의 실패는 세계를 고려하지 않는 무감각에서 비롯된다.
이 무감각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기 자신과 불화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왕국에서 누리는 달콤한 독재를 끝내고, 내 안에 시끄러운 의회를 세우는 일이다. 이러한 불화를 통해서만 내가 누군가의 발을 밟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 분열에 이르지 않으면서도 복수의 자아를 용인하고 이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내면에서 시작하는 최초의 정치다. 민주주의다. 새해에는 고독한 민주주의자들의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조무원 정치학 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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