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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나를 지킨다’…주머니 속 녹음기는 ‘을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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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의 한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최우람(36)씨는 1년 넘게 회사 대표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렸다. 단체 회식에 데려온 6살 딸 앞에서도 대표의 모욕이 이어지자, 최씨는 지난해 8월부터 녹음을 ‘생활화’했다. 최씨는 8일 한겨레에 “소형 녹음기를 구매했고 녹음용으로 구형 휴대전화도 한대 더 들고 다녔다”고 했다. 대표의 폭언은 그칠 줄 몰랐고, 성희롱까지 발생하자 참다못한 최씨는 지난달 8일 노동청을 찾아 대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녹음된 대표의 생생한 폭언이 증거로 제출됐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인턴 보좌진을 향한 ‘막말’ 녹취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각종 비위 의혹도 갑질 피해를 당한 전직 보좌직원들의 녹취와 기록을 바탕으로 제기된다. ‘을’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면서 상사의 갑질이 생생하게 중계되지만, 경각심과 분별 없는 상사의 폭언도 계속되고 있다.



‘괴롭힘 피해 직장인’들이 상시적으로 녹음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피해자 스스로 ‘직접 증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일반적으로 회사가 사건을 조사한 뒤, 그 결과를 노동청에 넘긴다. 사내 조사 과정에선 일기나 주변 증언 등 정황 증거를 넘어, 직접적인 증거 제출을 요구받는다.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ㄱ씨는 동료들의 모욕성 발언과 뒷말에 시달렸지만, ‘객관적 증거가 없어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내 조사 결과에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ㄱ씨는 그날 이후 출근하자마자 화장실에서 녹음기를 준비하고 몰래 주머니에 넣는 생활을 이어간다고 했다. ㄱ씨는 “녹음기에 온갖 신경을 써야 해서 삶의 질이 떨어졌다”면서도 “녹음을 안 하면 내가 피해자인데도 무고를 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녹음기를 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이 시행된 지 7년 가까이 흐른데다 기술이 발전해 휴대전화 사용자 누구나 간편하게 녹음 또는 촬영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직장 내 모욕과 폭언 행위는 그치지 않는다. 직장갑질 119가 지난달 1~14일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경험 및 유형’을 보면, 괴롭힘 중 ‘모욕·비하·무시’가 17.8%로 가장 많았다. 손쉽게 녹음할 수 있는 유형이다. 장종수 직장갑질 119 노무사는 “모욕적인 발언을 하면서도 그것이 괴롭힘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관성에 젖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며 “갑질이나 막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 위계적인 구조와 분위기에서 ‘녹음을 해도 이게 갑질이 되겠어?’ 정도로 치부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괴롭힘이 발생한 뒤 막말과 폭언을 조심하는 분위기 대신 ‘녹음’을 금지하는 퇴행적인 회사도 있다. 최우람씨 회사는 최씨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직후 사규를 신설해 ‘회사에서 사진 및 동영상 촬영과 음성 녹음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최미숙 노무사는 “녹음·촬영 금지 조항을 사규에 넣는 것 자체가 위법은 아니지만, 사규보다 노동자의 방어권이 우선인 만큼 녹취가 직장 내 괴롭힘 분쟁 등에 사용된다고 해도 사규 위반으로 징계 대상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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