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
일본 나라현 오쿠야마토의 인구 580명인 구로타키 마을. 이 작고 조용한 산골에 일본 토종 아웃도어 기업 몽벨(Montbell) 매장이 문을 열자 업계에선 '왜 하필 그곳인가'라는 궁금증이 쏟아졌다. 그러나 현장을 방문하면 의문은 곧 해소된다. 작은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방문객 행렬, 매장 앞 전기톱 아트 '몬타베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구로타키는 어느새 '작지만 반드시 들러야 할 아웃도어 성지'가 됐다.
1975년 창업한 몽벨의 역사는 '거대자본 없이 브랜드를 키워낸 일본형 성장스토리'로 유명하다. 창업자 다츠노 이사무는 산악가이자 물리학 전공자로 '장비가 무거워 등산이 힘들다'는 체험에서 출발해 경량화 기술에 집착했다. 초기 테스트는 '직접 백패킹하며 하룻밤 보내기'가 기본이었고 '가벼운 등산'에 심취한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장에게서 도망치고 싶어도 산에서는 못 도망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다.
1990년대 일본 하이커들의 경량화 욕망을 정확히 읽어낸 몽벨은 초경량 다운과 패커블 레인웨어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시장을 장악했다. '플라스마 1000' 같은 경량패딩은 "입은 건지 모를 정도"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술력을 상징하는 제품이 됐다. 동시에 몽벨은 도시생활자 공략을 강화해 자전거 출퇴근 코트, 아동 통학장비 등 일상 제품군을 확대했고 '등산을 안 해도 몽벨은 산다'는 독특한 소비층을 만들며 마케팅 성공사례를 남겼다.
이런 브랜드 DNA는 지방과 협업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구로타키 매장의 특징은 운영주체가 마을 임업협회라는 점이다. 삼나무숲을 관리해온 협회는 산업축소와 인구감소라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생업모델을 찾아야 했고 오미네산, 요시노온천 관광객의 흐름을 활용할 파트너로 몽벨을 선택했다. 매장은 일반 아웃도어제품뿐 아니라 임업작업복 등 전문 라인업을 강화하며 차별화를 시도했고 지역 삼나무 모티브의 '구로타키 한정 티셔츠'는 온라인 비판매 전략으로 오히려 희소성을 높였다.
결국 구로타키 매장은 단순한 소매점이 아니라 산촌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실험이다. 예상치를 넘는 매출, 방문객 증가, 주민 자부심 회복까지 아웃도어 브랜드 하나가 산골을 되살리는 드라마가 진행 중이다.
몽벨은 일본 전역에서 로컬협업 성공사례를 축적해왔다. 홋카이도 오쿠시리섬 매장은 지역 체류시간을 늘리는 '관광앵커'가 됐고 나가노·시가의 거점스토어는 지자체가 선정한 대표적 민관협력 모델이 됐다. 거대투자가 아니라 자연과 생활을 연결하는 방식의 일본형 전략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특히 나라현과 몽벨이 포괄협약을 체결해 자전거, 트레킹 루트 개발, 생태관광, 농림의류 개발 등 광범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자연을 경제자산으로 재해석해 인구감소 지역에서도 새로운 산업을 설계하려는 시도다.
이 외에도 경쟁브랜드 스노우피크의 '그린필드 이나시' 프로젝트는 일본 지방 활성화의 또 다른 모델을 보여준다. 나가노현 이나시의 한적한 고원지대에 캠핑장, 체험시설, 카페를 통합해 조성한 공간은 방치됐던 목초지를 '주말 성지'로 바꿨고 지역 농산물·공예품 소비까지 끌어올리며 지역경제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브랜드가 지역자원과 결합할 때 어떤 파급력이 발생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일본의 흐름이 던지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낙후지역을 살리는 힘은 더이상 대규모 개발이나 단기적 이벤트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역의 자연·문화·산업을 이해하고 이를 브랜드의 스토리와 경험으로 재해석하는 기업이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상생구조가 형성된다. 일본 지방은 브랜드를 '지원받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 대하며 작은 성공을 축적해 구조를 바꾸고 있다. 지역 정체성에 귀 기울이고 민간과의 실험을 허용하는 지방정부, 그리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려는 브랜드가 많아질 때 지방소멸의 흐름 또한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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