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산기 없는 년이니까. 입던 팬티만 안 벗어주지 막 다 벗어줘요. 그건 내가 더러워서 못 주는 거고…. 우리 아빠도 그랬어요. 이것저것 다 주고 ‘런닝’ 바람으로 집에 온 적도 있어요.”
자기보다 남 먼저 챙기느라 “잠도 밤도 다 까먹고” 토끼 눈이 될 정도로 바쁜 시인 김민정(50). 난다 출판사 대표이자 베테랑 편집자인 그가 지난달 산문집 ‘역지사지’(난다)를 펴냈다. 문단의 ‘남 생각’ 1인자가 왜 이런 사자성어를 달고 나타났을까. 지천명을 맞은 다짐인 듯했다. “나이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말을 머리에 걸고 살아야겠다 생각해요. 역지사지만 되면 싸울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지난 16년간 본지를 비롯해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산문을 연도별로 정리해 엮었다. 그는 “시집을 만들면서 시가 너무 쓰고 싶어졌다. 시의 몸으로 가기 위해 어질러진 것을 치우려다 보니 벗어놨던 산문의 옷가지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두 사람이 해묵은 산문을 끌어올렸다. 시인은 재작년 12월 부친상을 치렀다. “이 책 안에는 우리 아빠가 살아 있더라고요. 너무 리얼하게. 아빠를 살려주고 싶었어요.” 그는 “신문 연재를 하면 아빠가 그렇게 뿌듯해하며 신문을 사러 다녔다”고 했다. 각별했던 부녀지간이다. 물론 정치적 견해가 달라 서로 ‘외계인’으로 부르는 등 고성을 높인 일화도 책에 제법 있지만. 시인은 “격의 없는 아빠 덕에 자유로운 망아지처럼 클 수 있었다”고 했다. “이건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생각에 주저하던 그에게 “민정아, 이런 게 중요한 거다. 네 목소리가 실린 글은 너만 쓸 수 있으니까”라고 격려해준 선배(고원효 문학동네 인문팀 부장·2023년 작고)도 있었다.
시인 김민정은 계산 없이 퍼주는 사람이다. 기자에겐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어준다. 신작 산문집 '역지사지' 출간을 계기로 2025년 12월 3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페꼼마 합정점에서 그를 만났다. /장경식 기자 |
자기보다 남 먼저 챙기느라 “잠도 밤도 다 까먹고” 토끼 눈이 될 정도로 바쁜 시인 김민정(50). 난다 출판사 대표이자 베테랑 편집자인 그가 지난달 산문집 ‘역지사지’(난다)를 펴냈다. 문단의 ‘남 생각’ 1인자가 왜 이런 사자성어를 달고 나타났을까. 지천명을 맞은 다짐인 듯했다. “나이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말을 머리에 걸고 살아야겠다 생각해요. 역지사지만 되면 싸울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지난 16년간 본지를 비롯해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산문을 연도별로 정리해 엮었다. 그는 “시집을 만들면서 시가 너무 쓰고 싶어졌다. 시의 몸으로 가기 위해 어질러진 것을 치우려다 보니 벗어놨던 산문의 옷가지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두 사람이 해묵은 산문을 끌어올렸다. 시인은 재작년 12월 부친상을 치렀다. “이 책 안에는 우리 아빠가 살아 있더라고요. 너무 리얼하게. 아빠를 살려주고 싶었어요.” 그는 “신문 연재를 하면 아빠가 그렇게 뿌듯해하며 신문을 사러 다녔다”고 했다. 각별했던 부녀지간이다. 물론 정치적 견해가 달라 서로 ‘외계인’으로 부르는 등 고성을 높인 일화도 책에 제법 있지만. 시인은 “격의 없는 아빠 덕에 자유로운 망아지처럼 클 수 있었다”고 했다. “이건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생각에 주저하던 그에게 “민정아, 이런 게 중요한 거다. 네 목소리가 실린 글은 너만 쓸 수 있으니까”라고 격려해준 선배(고원효 문학동네 인문팀 부장·2023년 작고)도 있었다.
시인은 “문학하고 시 쓰는 사람으로서 (이 산문집은) 화려한 치장이 있는 글이라기보다 맨얼굴에 세수하고 뛰는 글”이라고 했다. 흥이 날 땐 “즉흥의 탬버린”을 흔들고, 화가 날 땐 거침없이 쏘아붙인다. “팔리지도 않는 시집을 왜 내냐.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시냐”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야, 너 어차피 죽을 건데 살긴 왜 살아”라고 받아치는 대목에선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 유쾌 상쾌 통쾌한 생활 산문이다.
베테랑 편집자인 김민정 시인은 과거 문학동네 시인선을 기획·총괄, 1번(최승호 ‘아메바’)부터 203번(임유영 ‘오믈렛’)까지 관여했다. 현재는 난다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김민정 시인이 카페꼼마 합정점에 진열된 문학동네 시인선을 뒤로 하고 섰다. /장경식 기자 |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는 “편집자 자아가 90%, 시인 자아가 10%”라고 말한다. 자신이 편집한 ‘남의 책’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번뜩였다. “제 몸을 움직일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책을 기획할 때 미친 즉흥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감(感). 감으로 동(動)하는 순간에 그 즉흥이 나와요.” 문학동네 시인선을 기획·총괄했고, 시인 박준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등 숱한 베스트셀러 제목의 작명가로 꼽힌다.
출판계가 잠잠해지기 시작하는 12월에 매번 자신의 책을 내는 것도 역지사지의 자세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지금 내 거 해야지 네 거 할 때야?’ 들리는 듯하다”는 것. 참고로 시인은 본인 인터뷰에서 애정을 담뿍 담아 다른 시인들 책 얘기를 더 많이 하고 갔다. ‘역지사지’란 제목으로 책을 내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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