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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배울 게 많은 배우, 故 안성기

조선일보 박해현 '한국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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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30여 년 전 배우 안성기를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인사말이었다. 순간, 아차 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적도의 꽃’, ‘고래사냥’ 등등 안성기 출연작을 그 얼마나 봤는데, 처음 본다니. 아무튼 그는 특유의 선한 눈매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내 말을 개그로 여겼을까. 물어볼 틈이 없었다. 그날 이후 그를 현실에서 재회한 적은 없어도 영화관에서는 숱하게 만났다.

한때 최인호 원작, 배창호 감독, 안성기 주연의 영화가 전성기를 누렸다. 최인호의 소설 ‘깊고 푸른 밤’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에서 안성기가 보여준 연기는 빼어났다.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아가던 그의 배역 이름이 지금도 기억난다. 배우 그레고리 펙을 흉내 낸 그레고리 ‘백’.

지난 5일 세상을 뜬 안성기는 마치 수행하듯이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연기해야 할 인물을 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실습하면서 삶을 성찰했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서 ‘사람을 안다는 것’에서 배우의 삶을 공감의 귀감(龜鑑)으로 삼았다. 배우는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창의적인 집중력으로 타인을 해석하고,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기 때문이다. 명배우의 연기 수업에서 관객들이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안성기는 배우의 자긍심을 삶의 품격으로 승화시켰다. 겹치기 광고 출연의 탐욕을 억제했고, 금배지 제안도 뿌리친 채 일생일업(一生一業)에 전념했으며, 투병하다가 퇴원한 뒤 병원에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거금을 기부했다. 정말 배울 게 많은 배우였다. 이런 배우는 처음 봤다.

/박해현 ‘한국문학’ 편집위원

[박해현 '한국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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