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문화부 차장 |
최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AI 기업이 사전에 권리자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AI 개발에 데이터를 활용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선(先)사용, 후(後)보상’ 방식이다. 지금도 기업들은 ‘영업비밀’이라며, 어떤 저작물을 얼마나 써서 AI 모델을 개발했는지 꽁꽁 감추는 실정이다. 물건(저작물)을 빼앗긴 사람은 상대가 뭘 얼마나 가져갔는지조차 모르니, 가격은 사는 사람 마음이 될 것이다. 창작자들의 피땀이 어린 저작물은 도매금도 아니고 ‘땡처리’ 될 것이 뻔하다. “내 피 땀 눈물 내 마지막 춤을/다 가져가 가/…/내 몸 마음 영혼도/너의 것인 걸 잘 알고 있어/이건 나를 벌받게 할 주문”(BTS ‘피 땀 눈물’ 중에서). 사실상 AI의 저작물 학습에 대해선 무조건적 면책을 도입하자는 것과 별로 다름이 없다.
AI 대전환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데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창작자와 저작권자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기만 하면 국내 AI는 글로벌 빅테크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국내 데이터는 우리 기업만 학습하게 하면 좋겠지만, 그런 비관세 장벽이 가능할 리가 없다. AI 학습의 저작권 면책은 한국을 글로벌 빅테크들의 가장 만만한 데이터 채굴장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해외 선발 주자들의 AI가 국내 저작물을 학습해 한국어 등 결과물의 품질을 올리는 게 국내 기업들의 개발보다 더 빠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칫 데이터(저작물) 주권도 잃고, AI 격차도 따라잡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AI 학습 규제는 꼭 저작물에만 관련된 것도 아니다. 글로벌 AI 기업들은 한국의 제조업 데이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학습의 무분별한 허용이, 산업 분야 AI 솔루션 개발을 위한 원천 데이터를 글로벌 빅테크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비스 산업도 위험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기업의 자산인 데이터를 훔치는 건 당연히 금지될 것’이라는 반론이 나올 것 같다. 역으로 궁금해진다. 저작물은 왜 훔쳐도 되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각종 안전장치를 둬서 AI 개발과 저작권자의 권리 사이에 균형을 찾자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AI의 학습 데이터 공개를 의무화했고, 일본도 저작자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엔 면책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사법부가 사건별로 판단하고 있지만 원저작물의 시장을 침해하는 AI의 학습은 ‘공정이용’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건 같다.
조선 말기에 비하자면 ‘근대적 공장 설립 장려’를 노리는 지금의 정책은 역으로 열강들에 광산 개발권을 마구 넘겼던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없지 않다. 아무리 급해도, 한 치 앞만 보면서 천 리 길을 갈 순 없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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