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외연도 항로를 운항하는 웨스트프론티어호가 외연도에 접안하고 있다. 보령시 제공 |
장철호 | 한국섬진흥원 부연구위원
우리나라 어디든 차로 두세시간 달리면, 섬이 나타난다. 그곳에서도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어르신이 병원에 다니며,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매일 육지를 오간다. 그들의 모든 일상은 단 한가지 조건 위에 있다. 바로 ‘배가 잘 다니느냐’는 것이다.
섬 주민에게 여객선과 도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여객선과 도선은 버스이자 지하철이고, 택시이자 구급차이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이기도 하다. 그래서 배가 결항한다는 문자 한통은 병원 진료와 장보기, 출근과 등굣길을 끊어버리는 통보가 된다. 섬에 사는 것은 개인의 선택일 수 있으나, 섬 교통은 국민으로서 기본권으로 보장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신문기사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 용어는 말 그대로 환경을 지키고, 사람과 사회를 배려하며,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자는 뜻이다.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삶의 기준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섬 교통만큼 이 세가지 요소가 중요한 분야도 흔치 않다.
먼저 환경(E) 부문이다. 지금 연안여객선과 도선은 대부분 경유나 중유 같은 화석연료로 움직인다. 이산화탄소는 물론 대기오염 물질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런데 섬을 오가는 배는 보통 거리도 짧고, 운항 시간표도 거의 매일 비슷해 하이브리드선 등 친환경 선박이나 자율운항 선박을 도입하는 데 적합하다. 유럽 등 해외는 이미 섬 교통에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아직 규제가 본격화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관심은 낮지만, 곧 해외와 비슷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고 전환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사회(S) 부문이다. 섬 교통은 그냥 ‘배가 다니는 문제’가 아니라 섬에서 살기 위한 필수 생활 인프라다. 배가 얼마나 자주 뜨는지, 요금은 얼마나 되는지, 결항은 얼마나 발생하는지는 섬 주민의 일상 생활과 직결된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에서 추진 중인 1천원 여객선, 여객선 공영제는 그저 ‘좋은 복지정책’이라는 의미를 넘어, 섬 주민도 육지와 같은 수준의 삶을 누리도록 돕는 사회 부문의 핵심 정책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관광객 수요와 주민 일상 수요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다. 관광객이 많은 성수기에는 선박 운항이 늘지만, 비수기에는 선박 점검 및 수리 등을 이유로 운항이 줄거나 아예 휴항하여 섬 주민의 이동이 제한되기도 한다. 때로는 관광객을 위해 운항 시간표가 바뀌어 섬 주민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섬 교통은 ‘관광객이 먼저냐, 섬 주민이 먼저냐’가 아니라, 누구든 필요할 때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운항, 요금, 대체 수단 등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지배구조(G)다. 섬 교통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하느냐의 문제다. 섬 교통 관련 예산은 보통 ‘적자 보전’ 또는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편성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어느 항로에 얼마의 예산을 어느 목적으로 지원했는지, 운항 횟수와 요금은 무슨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섬 주민 등 이용자 의견은 어떤 절차로 반영되는지 등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불투명하면 ‘지원은 늘었는데 체감 효과는 없다’는 불신이 생긴다. 그래서 섬 교통을 보다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개선하려면 예산 지원을 받는 선사의 재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섬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협의체나 자문기구를 만들어 그들의 의견이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적자 항로를 언제까지 세금으로 메울 것이냐가 아니라, 섬 주민이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교통 수준은 무엇이며,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육지에서 운영하는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은 그 어느 것도 수익성만으로 서비스 및 운영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섬 교통도 마찬가지다.
섬은 대한민국의 끝이 아니다. 기후위기와 지역 소멸, 교통 불평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난제를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거울이다. 섬 교통이 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의 모범 사례가 된다면, 그 효과는 섬 주민에게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농어촌 교통, 광역 교통,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교통 정책을 바꾸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섬이니까, 섬이라서 어쩔 수 없는’이 아닌 ‘섬이니까 더 먼저, 더 과감하게 환경을 보전하고 사람을 위하며, 원칙을 지키는’ 섬 교통. 그 길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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