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중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가운데 중국이 이중 용도 물자 수출 금지 하루 만에 희토류 수출통제와 반도체 소재 반덤핑 카드까지 꺼내 들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동안 여행 자제령, 무력시위 등을 통해 발언 철회와 사과 등을 압박했으나 일본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최후통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일본 측은 대응 수위를 조절하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첨단 반도체 장비·소재를 앞세워 맞대응할 경우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일부 희토류 품목의 수출 허가 심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품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전기차 모터용 네오디뮴 자석에 사용되는 디스프로슘과 터븀 등 중희토류가 100% 가까이 중국에서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반도체 핵심 소재인 일본산 디클로로실란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중국 측은 1년간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중국에서도 일정량 이상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조치들은 중국 상무부가 일본에 이중 용도 물자 수출 금지를 단행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중 용도 수출통제 목록에는 화학·전자 및 센서부터 해운과 항공우주에 사용되는 장비 및 기술에 이르기까지 800개 이상이 포함됐다. 노무라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이중 용도 품목은 총 10조 7000억 엔(약 100조 원) 규모로 2024년 일본의 대중국 수입의 42%를 차지한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중 용도 물자 수출 금지 조치가 일본의 군사력 증강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중국이 이중 용도 품목 수출 금지에 이어 희토류 수출통제 등을 연이어 꺼내 들면서 일본 내에서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노무라연구소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가 3개월간 지속될 경우 일본 경제는 연간 6600억 엔(약 6조 1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기우라 세이지 도카이도쿄인텔리전스연구소 수석 분석가는 “자동차 산업의 생산은 상당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며 “특정 브랜드에 따라서는 공장 가동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여러 대화에 열려 있고 문을 닫지 않았다”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직후 중국 측이 강도 높은 조치를 잇따라 발표하자 적잖이 충격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당장은 상황 악화를 피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국 측의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경우 맞대응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이 최첨단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독점하는 품목이 적지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이 세계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회로 형성, 즉 실리콘 웨이퍼에 정밀한 회로를 그리는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필수 소재다. 포토레지스트의 글로벌 1위 기업인 JSR이 사실상 일본 정부 소유라는 점에서 맞대응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대만 공상시보는 “중국 기업들이 포토레지스트와 같은 핵심 소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SMIC나 화훙반도체 같은 대형 반도체 첨단 공정 생산 라인은 생산량을 줄이거나 완전히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첨단 디스플레이용 소재로 일본이 세계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초고순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역시 보복 카드로 거론된다. 일본은 반도체 패키징 소재, 웨이퍼 세정 장비와 정밀 계측 장비 등에서도 세계시장의 60~98%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중국의 3대 수입국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약 6.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일본 대중국 수출의 절반 이상이 기계 및 전자 장비인 것으로 파악된 만큼 중국 역시 일본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처지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일본이 반격에 나설 경우 중국이 입을 타격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상대의 급소를 공략할 수 있는 무기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외교적인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세부 내용이 모호한 규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의도적일 수 있다”며 “일본 내 우려를 불러일으켜 다카이치 총리가 양보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윤선 기자 sepys@sedaily.com베이징=김광수 특파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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