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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재생e 동시 확장 딜레마…12차 전기본 '유연성'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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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현 기자] 재생에너지 확대가 본격화되면서 원전의 경직성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전력 계통의 구조적 충돌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차기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원전과 재생에너지 간 갈등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핵심 해법으로는 원전의 탄력운전 도입과 저장전원·계통 보강 등 전력 시스템 전반의 유연성 확보가 제시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전력거래소는 7일 '원전의 경직성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극복방안'을 주제로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를 열고 12차 전기본에 반영할 주요 쟁점을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1차 정책토론회에서 신규 원전 건설과 석탄발전 폐지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진 데 이어 원전 경직성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인사말에서 "한국은 원전·석탄·가스가 각각 30% 안팎을 차지하고 재생에너지는 10% 수준에 불과한 전원 구조를 갖고 있다"며 "2030년까지 석탄과 가스를 줄이면서도 반도체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력 계통이 처한 딜레마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김 장관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늘리기로 한 약속은 이행해야 하지만, 당장 전력 소비가 적은 봄·가을철에는 경직성 전원인 원전과 간헐성 전원인 재생에너지가 직접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 국내 원전 건설은 중단하면서 해외 수출을 추진했던 모순을 극복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적정 비율을 이성적으로 조율해 최적의 에너지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적절한 '에너지믹스' 필요


강부일 전력거래소 계통운영처장은 "2024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은 10% 수준이지만, 계통이 겪는 유연성 문제는 이미 고도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태양광 설비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지역 내 공급 과잉과 수도권 송전 부담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태양광 발전이 집중된 호남 지역은 전력 생산이 소비를 초과해 계통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강 처장은 "낮 시간대 태양광 발전량 급증으로 순부하가 급격히 떨어지는 '덕커브(Duck Curve)'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수도권으로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망 보강과 '에너지 고속도로' 적기 준공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상 변동성 확대로 발전량 예측 오차가 커지면서 수급 안정성 확보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받아낼 수 있는 계통 유연성"이라며 "원전 탄력운전, 저장전원 확보, 송전망 보강, 수급계획과 송변전계획의 동시 최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전 업계는 재생에너지 확대 국면에서 원전의 역할을 기저전원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며 '탄력운전' 방안을 제시했다.

신호철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장은 "AI와 탄소중립 시대에는 안정적이면서도 경제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라며 "완벽한 전원은 없고 각 전원의 장단점을 조화롭게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원전 출력 제한이 증가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탄력운전 없이는 재생에너지 확대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햇다.


신 원장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원전 강국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응해 원전 출력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있다"며 "국내 원전 역시 경직성을 탈피하기 위해 8대 핵심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며 대부분 완료 단계"라고 밝혔다.

한수원은 핵연료·제어봉·노심 감시 등 탄력운전에 필요한 핵심 기술 개발을 대부분 마무리했으며 내년부터 연간 100일 이상 출력 변동 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 원장은 "원전은 관성력과 전압 안정 측면에서 계통의 뼈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유연성을 갖춘 원전이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하는 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MR(소형모듈원전) 역시 적기에 개발해 탄력운전에 가담하고 원전을 이용한 수소 생산 등 섹터 커플링 기술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재생에너지 측면에선 단일 기술이 아닌 다양한 유연성 자원의 조합이 해법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손성용 가천대학교 교수는 재생에너지 간헐성 보완을 위해 단일 기술이 아닌 '포트폴리오 접근'을 주문했다. 손 교수는 "과거에는 송전선로 건설 등 하드웨어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앞으로는 AI와 다양한 분산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연성 자원으로 ESS(에너지저장장치), DR(수요반응), V2G(전기차 역송전), 가상발전소(VPP) 등을 언급하며 "자원마다 반응 속도와 지속 시간, 비용이 다른 만큼 이를 경제적으로 조합하는 믹스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원전 탄력운전, 기술은 '자신' vs 규제·안전은 '신중'

토론의 최대 화두는 '원전의 탄력운전(부하추종)' 가능성 여부였다. 원전업계와 학계는 기술적 준비가 끝났다는 입장이었으나 규제와 안전성 측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APR1400 원전은 설계 단계부터 부하추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고 추가 기술 개발을 통해 2032년부터는 하루 50%까지 출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익 KAIST 교수 역시 "원전의 탄력운전은 물리적·과학적 불가능이 아니라 현재 제도의 한계일 뿐"이라며 "한수원에 기술 개발을 독려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힘을 실었다.

반면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자동 운전' 여부를 꼬집었다. 전 교수는 "진정한 탄력운전은 주파수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하는 AGC(자동발전제어)가 핵심인데, 현재 미국과 한국 규제상 원전의 자동 운전은 라이선스 문제로 막혀 있다"며 "수동 조작만으로는 급변하는 계통 유연성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안전성'과 '수용성'을 경계했다. 한 소장은 "부하추종 기술 개발 논의 속에 안전성보다는 경제적 페널티 회피가 우선시되는 것 같다"며 "잦은 출력 변동이 안전에 미칠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산업계, AI 전력 수요 폭증..."재생·원전·LNG 가릴 처지 아니다"

산업계는 AI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인한 '전력 보릿고개'를 우려하며 에너지원의 믹스와 분산형 전원을 강조했다.

김무환 SK이노베이션 에너지솔루션 사업단장은 "AI발 전력 수요는 천문학적 수준이며 이를 365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단일 에너지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기저전원인 원전, 빠른 공급이 가능한 LNG 등을 모두 활용해야 하는 '4차 방정식' 상황"이라며 "송전망 병목 현상을 피하기 위해 SMR과 같은 분산형 전원 활용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이정익 교수도 "AI,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에만 맡길 수는 없다"며 "경제성이 높은 원전을 추가 건설해 산업 부흥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력 시장 개편과 전기요금…"원전도 입찰 시장 들어와야"

경직된 전력 시장 제도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였으며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다.

주한규 원장은 'ESS(에너지저장장치)' 활용을 해법으로 내놨다. 그는 "배터리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만큼 낮 시간에 과잉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판매하는 모델을 확산시켜야 한다"며 "원전에 ESS를 접목한 태양광 발전을 적절히 믹스하면 발전 단가를 합리적으로 맞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영환 교수는 "제주도에서 시행 중인 전력 입찰제에 원전과 열병합발전도 참여시켜야 한다"며 "마이너스 가격(전력 공급 과잉 시 돈을 내고 전기를 파는 상황)에도 견딜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전원만 살아남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비자 대표로 나온 이서혜 E컨슈머 대표는 '전기요금'에 방점을 찍었다. 이 대표는 "미국 시민들이 AI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기료가 인상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12차 전기본에서는 에너지 믹스 변화가 실제 소비자가 지불할 전기요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국민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12차 전기본 수립 과정에서 신규 원전 2기 건설 여부를 포함한 쟁점 사항들을 국민 여론조사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최종안을 결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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