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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치매 걸리면 남편은 결혼 스트레스 ‘감소’?

동아일보 박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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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성별에 따라 체감 스트레스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성별에 따라 체감 스트레스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가 치매나 인지장애를 겪게 되면, 부부 모두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성별에 따라 느끼는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는 정반대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편이 뇌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아내들은 결혼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뚜렷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아내가 치매나 경도 인지장애를 겪는 경우 남편들은 오히려 결혼 생활의 부담을 덜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 개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와 시카고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전국 단위 고령자 조사 자료를 활용해 기혼 부부 620쌍을 5년간 추적 관찰했다.

인지 검사를 통해 참가자들의 뇌 건강 상태를 ‘정상’, ‘경도 인지장애’, ‘치매’ 세 가지로 분류했다.

결혼 스트레스는 ‘배우자가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비판한다고 느끼는 빈도’를 기준으로 측정했다. 이는 전반적인 결혼 만족도가 아니라 생활 습관 개선 등에 관한 요구와 비판으로 인한 부담감에 초점을 맞춘 지표다.

주요 결과

분석 결과 남녀에 따른 차이가 명확했다.


남편이 치매를 앓는 경우, 아내들은 인지적으로 건강한 남편을 둔 아내들에 비해 결혼 생활에서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답했다. 남편이 경도 인지장애일 때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지만 강도는 다소 약했다.

반면 치매나 경도 인지장애를 겪는 아내를 둔 남편들은 인지적으로 건강한 아내를 둔 남편들보다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가 더 낮다고 밝혔다.

아내들이 더 힘들어하는 이유
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성별에 따라 체감 스트레스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성별에 따라 체감 스트레스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연구진은 결혼 생활에서 남녀가 맡은 역할의 차이를 주된 이유로 지목한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대화 유지, 정서적 유대, 관계의 조율 등 이른바 ‘감정노동’을 더 많이 담당한다. 남편에게 인지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대화가 어렵고 정서적 친밀감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아내들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잃었다고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사회적 기대도 더해진다. 남편이 아프면 아내가 돌봐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다.

연구진은 이를 정서적 상실과 돌봄 부담이 동시에 오는 ‘이중 위기’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남편에게서 받던 정서적 지지는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대신 간병, 관리, 책임은 늘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남편들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느끼는 이유

남성은 상황이 다르다. 연구진은 남편들이 직접 돌봄을 맡기보다는 성인 자녀의 도움을 받거나 외부 간병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한 가지 이유로 제시했다. 즉, 아내를 돌보는 부담을 직접 몸으로 떠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내들이 겪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체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명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많은 아내가 평소 ‘남편 병원 예약 챙기기’, ‘약 복용 관리’, ‘나쁜 생활 습관 지적’ 등 남편의 건강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는 남편의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만,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간섭이나 비판, 잔소리로 느낄 수 있다.

아내가 인지장애로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잔소리나 비판이 줄어들면서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 강도가 낮아졌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감소가 꼭 ‘좋은 신호’는 아냐

연구진은 남편들이 느끼는 결혼 스트레스 감소가 결코 긍정적인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의 건강 관리와 잔소리는 남성의 건강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즉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것은 동시에 건강을 지켜주던 보호장치가 사라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연구진은 고령화로 치매와 인지장애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부부를 지원하는 정책과 돌봄 프로그램 역시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차이를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고령화 속도가 특히 빠른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치매 환자를 돌보는 주 보호자는 배우자인 경우가 많고, 그중 상당수가 아내다. 장기 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 일상 돌봄과 정서적 관리, 병원 동행, 복약 관리 등은 여전히 가족, 특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해 아내가 주 1~2회라도 돌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등 성별 특성을 고려한 정책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Social Science & Medicine)에 이번 달 게재됐다.

관련 연구논문 주소: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5.118772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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