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시 트라이브 바시티 재킷과 스투시 SS로고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의 뒷모습. [BBC ‘더룩(The Look)’ 스투시 편 캡처] |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 속에서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릅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일순간에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메가 브랜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유통가의 속사정, ‘언박싱 프로’를 통해 들려드립니다.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열정과 끈기가 있다면 브랜드는 성과로 따라올 것입니다.” (스투시 창립자 숀 스투시)
뉴욕, 런던, 파리, 서울, 도쿄, 호놀룰루….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스투시(Stüssy)’다.
스투시는 패션에 관심이 없어도 모르기 힘든 브랜드다. 독특한 필체의 로고와 도시 이름이 함께 적힌 스투시의 티셔츠는 매일 거리에서 수시로 마주친다. 전 세계 스투시의 플래그십 매장이 있는 도시에서는 기념품처럼 스투시 시티 티셔츠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기꺼이 줄을 선다. 40년간 스트리트 패션 외길을 걸어오며 생겨난 충성 고객들이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명품 브랜드도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순식간에 뒤처지는 요즘 세상에 스투시는 어떻게 한결같이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지난 2020년 스투시 40주년을 맞아 발매한 스투시 트라이브 바시티 재킷 화보. [스투시 홈페이지] |
제임스 딘, 힙합, 스케이트보드…스트리트 패션의 태동
스투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스트리트 패션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투시가 대표하는 스트리트 패션은 전통적인 복식 규범이나 유행을 따르지 않고 개성을 중시하는 패션 경향이다. 주류 문화 대신 특정 사회 집단에서 즐기는 서브컬처, 즉 하위문화의 등장과 함께 발전했다.
하위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미국에서 태동했다. 전후 새로운 자유의 물결을 맞게 된 젊은 세대는 전쟁 기간 즐기지 못했던 청소년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기 시작했다. 옷차림에도 변화가 반영됐다. 기성 세대가 입는 정장을 거부하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옷을 찾았다.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제임스 딘의 패션이 대표적이다. 영화에서 10대 청소년을 연기한 그가 입은 블루종 스타일의 빨간 재킷과 청바지, 흰 티셔츠는 전설로 남았다. 청바지는 청춘과 자유를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스트리트 패션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원동력은 힙합 문화였다. 미국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서 활동하던 힙합 아티스트들은 음악을 통해 가난과 차별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랩만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아니었다. 큰 티셔츠와 헐렁한 바지, 스니커즈. 불량해 보였던 이 비주류 패션이 힙합 음악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됐다.
비슷한 시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스케이트보드가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었다. 스케이트보드는 단순히 놀이가 아니라 자유로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에 반항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들은 주로 화려한 그래픽이 들어간 형형색색의 티셔츠에 반바지, 스니커츠를 주로 입었다. 이처럼 힙합과 스케이트보드가 도시와 해변의 거리를 장악하면서 이제 이들의 스트리트 패션은 주류를 위협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스트리트 패션의 정수를 담아낼 브랜드의 탄생을 기다리면서다.’
스투시의 바시티 재킷. [스투시 홈페이지] |
시작은 서핑보드…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뉴욕으로
1954년 스위스 이민자의 손자로 태어난 숀 스투시는 캘리포니아주의 해변 도시 라구나 비치에서 자랐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서핑을 많이 접하고 즐길 수 있었다. 20대가 된 그는 자연스럽게 서핑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핑보드에는 검정색 마커로 자신의 성(姓)인 스투시로 된 서명을 써 넣었다. (이 서명은 화가였던 숀 스투시의 삼촌이 만들어 준 것으로 알려졌다.) 모음 알파벳 위에 점 2개를 찍은 움라우트(ü) 표기, 그래피티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직선적이고 역동적인 필체, 지금의 브랜드 로고가 이때 탄생했다.
서핑보드에서 패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우연이었다. 숀 스투시는 1981년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액션 스포츠 리테일(Action Sports Retail)’이란 박람회에 참가했다. 서핑보드를 전시, 판매하면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홍보용 티셔츠를 만들어 입었다. 검정색 티셔츠에 흰색 스투시 서명을 올린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람들이 서핑보드보다 티셔츠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숀 스투시가 2013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당시 3일간 서핑보드를 24개가량 팔았는데 티셔츠는 1000장이 팔렸다. 6개월 뒤 참가한 박람회에서는 티셔츠뿐 아니라 당시 숀 스투시가 입고 있던 올드 네이비의 반바지까지 사가려는 바이어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의류 사업으로 확장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1984년 회계사였던 친구 프랭크 시나트라 주니어(미국의 전설적인 가수와는 무관하다)와 정식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다.
초기 스투시는 서핑, 스케이트보드, 힙합 등 하위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브랜드를 표방했다. 특히 스투시를 다른 의류 브랜드와 구분짓게 한 가장 큰 차별화 요소는 처음으로 스포츠를 패션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과잠(학과 잠바)’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바시티 재킷이나 야구모자는 원래 스포츠 팀을 위해서만 제작됐다. 스포츠 팀 로고 대신 브랜드 로고를 얹어 패션용 아이템으로 탈바꿈시킨 게 바로 스투시다. 1980년대 후반에는 스투시 로고가 달린 모자가 전체 매출의 20%에 달할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스투시는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을 뿐 아니라 하이패션 브랜드를 유쾌하게 비트는 시도도 처음 했다. 알파벳 C를 겹친 샤넬 로고를 재해석해 S를 겹친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다. 샤넬이 창립자 코코 샤넬의 앞글자인 C를 따서 만든 것처럼 스투시 역시 숀 스투시의 이름을 활용했다. 이 로고 아래에 ‘넘버 4(no.4)’를 붙이기도 했다. 샤넬을 대표하는 향수인 ‘넘버 5(no.5)’를 패러디한 것이다.
입소문을 타게 된 스투시는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1990년엔 세계 패션의 심장인 뉴욕 맨해튼 소호 지역에 첫 플래그십 매장을 연다. 타이밍도 잘 맞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힙합, 스케이트보드 스타일의 스트리트 패션은 더 이상 ‘패션 피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스투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해외 시장의 문도 두드렸다. 1980년대 후반 유럽 편집숍들을 통해 사업을 조금씩 확장했고, 1990년대 초에는 일본에도 진출하며 아시아 시장에 깃발을 꽂았다. 그 덕에 스투시의 매출 규모도 1991년 1700만달러, 1992년 2000만달러 수준으로 커졌다.
2020년 한정 발매된 스투시와 나이키 컬래버 운동화. [나이키 홈페이지] |
인플루언서의 원조, 스투시 트라이브
스투시에 대한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인터내셔널 스투시 트라이브(International Stüssy Tribe)’다. 말 그대로 스투시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디자이너, 아티스트, DJ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위문화라는 공통분모로 모여 서로 교류하며 영감을 줬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아도, 하위문화를 좋아하는 소수에게는 우상과 같은 이들이었다고 한다.
걸그룹 뉴진스와의 작업으로 국내에서도 관심을 받았던 일본 스트리트 패션의 대부 후지와라 히로시가 대표적이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Supreme)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 영국의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의 믹 존스, 스투시와 일본 유명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베이프(A Bathing Ape)를 유럽에 소개한 편집숍 김미 5(Gimme 5) 창립자 마이클 코펠만,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슬램잼의 창립자 루카 베니니 등도 회원이었다.
스투시는 브랜드의 열광적인 팬이자 크리에이터인 이들에게 각자의 이름을 새긴 바시티 재킷을 선물했다. 이 재킷을 입는다는 것은 그 도시의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끈다는 것을 상징했다. 이들은 뮤직비디오나 행사에 스투시 재킷을 입고 다니며 스스로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기도 했다. 인터내셔널 스투시 트라이브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인플루언서가 없던 시절에 그 역할을 했던 셈이다. 젊은 세대에게 선망의 대상인 ‘힙스터’들 덕분에 스투시는 누구나 입고 싶어하는 브랜드가 됐다. 영국 BBC 방송은 1990년대 초 다큐멘터리에서 샤넬, 랄프로렌과 함께 스투시의 성공 스토리를 다뤘다. BBC는 스투시를 가리켜 ‘사실상 전 세계 젊은이들의 교복(a virtual uniform for the young of the world)’이라고 표현했다.
슈프림, 굿이너프…스트리트 패션 뿌리가 된 스투시
스투시는 많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에 영감을 준 브랜드이기도 하다. 슈프림이 대표적이다. 슈프림 창립자인 제임스 제비아는 1989년 뉴욕에 유니언(Union)이라는 편집숍을 열었다. 스투시 제품을 들여놓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게 인연이 돼 제임스 제비아는 이듬해 뉴욕에 스투시 매장을 여는 데 도움을 줬고, 직접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1992년엔 로스앤젤레스에 스투시-유니언 공동 매장도 개점했다. 매장 공간의 절반은 스투시, 나머지 절반은 유니언이 쓰는 흔치 않은 구조였다. 제임스 제비아가 슈프림을 설립한 건 1994년의 일이다. 이 때는 숀 스투시도 슈프림 론칭을 도왔다고 한다.
일본을 아시아 스트리트 패션의 중심지로 만든 후지와라 히로시의 첫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인 굿이너프(GOODENOUGH) 역시 스투시의 성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후지와라는 스트리트 패션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로 항상 숀 스투시를 꼽는다. 러셀 시몬스의 팻 팜(Phat Farm), 엑스라지(X-Large), SSUR, 프레시자이브(Freshjive) 등 브랜드도 스투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투시는 현재 한정판 전략을 펼치고 있는 많은 패션 브랜드들의 선구자 역할도 했다. 나이키, 슈프림, 아워레가시, 릭 오웬스 등 협업의 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을 유지하면서도 한정 제작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높였다. 지난 2020년 나이키와 컬래버 한 ‘에어 포스 1’ 제품의 경우 해외 리셀(재판매) 플랫폼에서 가격이 3배 이상 치솟기도 했다.
한국 상륙 17년 만에 직진출…‘영포티’ 대명사도
스투시가 한국 소비자들과 만난 것은 2008년이 돼서다. 한 패션업체가 오프라인 유통권을 따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인근에 역사적인 첫 매장을 냈고, 지난해 3월까지 운영했다. 최근엔 스투시 본사가 직진출로 방향을 틀고 지난해 9월 5일 도산공원 주변에 새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이 같은 직진출 결정에는 탄탄한 고객층이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MZ세대는 힙합 아티스트, 배우, 운동선수 등을 통해 스투시를 흔하게 접하고 있다. 아워레가시처럼 이들에게 인기 많은 브랜드들과 컬래버를 자주 하면서 주목도는 더 높아졌다. 1990년대 Y2K 스타일의 유행, 편안한 옷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스투시의 인기를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해외 여행을 갔을 때 현지 도시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사왔다는 후기도 쏟아진다. 하와이 스투시 매장의 경우 새벽 4~5시부터 줄을 서야 호놀룰루 에디션을 구할 수 있다는 ‘꿀팁’이 공유될 정도다. 스투시의 인기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스투시가 스트리트 패션의 젊은 감성을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보니 최근엔 ‘영포티(Young Forty·젋은 40대)’ 브랜드로 지목되는 일도 생겼다. 원래 영포티는 기존 중년과 달리 트렌드에 민감한 40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최근엔 눈치 없이 영원히 청춘이고 싶은 철부지 중년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스투시를 비롯해 슈프림, 우영미, 아미, 스톤 아일랜드 등 M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영포티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에 휩쓸렸다.
원조 스투시 팬을 위한 즐거운 소식도 있다. 스투시의 기틀을 만든 숀 스투시는 1996년 돌연 지분을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팔고 회사를 떠났다. 이후 2008년 ‘에스더블(S/Double)’이란 브랜드를 선보였지만 8년 만에 정리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2024년 호주 서핑 브랜드 글로브(GLOBE) 본사 외벽에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부활을 예고하더니, 지난해 영업을 재개했다. 베일을 벗은 에스더블은 1980년대~1990년대 스투시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진짜 스투시의 귀환’이라며 국내 팬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스트리트 패션의 인기는 계속해서 뜨거울 것이라고 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스트리트 패션 시장 규모는 2023년 3253억달러에서 지난 2024년 3471억달러로 커졌고, 2032년에는 637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7.9% 성장하는 셈이다. 스투시는 매출을 공개하지 않는 회사지만, 온라인 매출만 연간 1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승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