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오른쪽)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추샤오치와 만나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3일 새벽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를 강제로 압송하기 불과 몇시간 전이다. 마두로 대통령 SNS 갈무리 |
미국이 ‘마약 단속’을 베네수엘라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중국의 ‘외부 영향력’을 제거하고 서반구를 완전한 미국 주도의 질서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석유 장악’을 강조하는 것도 중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값싸게 확보해온 것을 겨냥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의 약 80%가 중국으로 향했다. 베네수엘라는 중남미에서 중국의 핵심 거점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남미·카리브해 특사인 추샤오치(邱小琪)와 카라카스의 대통령궁에서 만난 사진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양국 우호를 과시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궁은 “마두로 대통령은 추샤오치 중국 특사와 3시간이 넘게 회담을 진행했다”면서 양측은 지금까지 체결된 600건 넘는 협정을 점검했다고 소개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시간 뒤인 3일 새벽(현지시각)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 대통령을 강제로 끌고 간 것은 중국 외교 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시점에 추샤오치 특사를 파견한 것은 미국의 작전 동향과 정세를 전혀 읽지 못한 오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중국의 한 외교 전문가는 한겨레에 “중국 당국은 미국이 이렇게 극단적인, 거의 ‘납치에 가까운’ 방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현지 대사관이나 외교부 담당자들이 ‘위에서 듣기 좋아하는 얘기’만 올리는 구조가 형성돼, 계속 ‘상황이 안정적’이라는 보고만 하는 바람에 지금처럼 난처한 결과가 나왔다. 지도부는 분명히 화가 상당히 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미 중앙정보국(CIA)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실에 첩자를 침투시켜 마두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파악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중국 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중국 언론들은 베네수엘라 ‘내부 첩자’가 마두로 납치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간첩들이 침투할 수 있는 경로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중국에서 내부 단속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대응은 원칙적 입장에서 점점 더 미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3일 밤 대변인 성명에서 “미국이 한 주권 국가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상대로 행동한 데 것에 중국은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미국이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베네수엘라 주권을 침해하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했다고 지적했다.
4일 왕이 외교부장은 “어느 한 나라가 국제경찰이 될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으며(…) 각국의 주권과 안전은 국제법에 의해 충분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미국의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헌장을 확고히 수호하고, 국제 도의(道義)의 최저선을 지키고(…)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수호하겠다”고 했다.
5일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일랜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방적이고 패권적인 행위가 국제질서에 심각한 충격을 주고 있다”면서 “강대국일수록 국제법 준수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그 뜻은 분명하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중국은 국제법과 도의를 준수하는 강대국임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이 ‘마약 단속’을 베네수엘라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중국의 ‘외부 영향력’을 제거하고 서반구를 완전한 미국 주도의 질서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석유 장악’을 강조하는 것도 중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값싸게 확보해온 것을 겨냥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의 약 80%가 중국으로 향했다. 베네수엘라와 중국과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중국의 중남미 핵심 거점이다. 중국 국유 에너지 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과 첨단기술기업 화웨이 등이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로 사업을 하고 있다. 2010~2020년 중국이 중남미에 판매한 무기의 86%를 베네수엘라가 사들였다. 중국은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와 자원을 값싸게 수입하고, 통신 장비와 무기 등을 수출하는 구조다. 특히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위안화 석유 거래가 달러 시스템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미국을 자극했을 것이다.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트럼프의 의도를 “석유전·자원전·통화전의 일환”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외에 마두로를 위해 구체적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의 핵심이익은 아니다. 중국은 베네수엘라 문제로 미국과 어렵게 이뤄낸 무역·기술 ‘휴전’을 깨뜨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부터 미국이 베네수엘라 인근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때도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무기 등을 지원하지 않았다. 사실상 트럼프를 향해 ‘우리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여론에서도 마두로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목소리는 강하지 않다. ‘환구시보’ 전 총편집장인 후시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침공 발표가 나온 직후 3일 밤 위챗에 올린 글에서 “마두로가 너무 빨리 무너졌고, 미군에 의해 곧바로 체포되었다. 그의 무기력한 대응은 충격적이었다”며 “마두로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정치적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조롱했다.
중국의 대응은 미국이 앞으로 ‘마두로 없는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관리’할지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과 경제적 이권을 최대한 지키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을 것이다. 상하이국제문제연구원 라틴아메리카연구센터 주임인 뉴하이빈은 4일 인터넷 언론 ‘관찰자망’ 인터뷰에서 이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대해 “석유가 목표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된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핵심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에 명시된 ‘미국의 서반구 패권 재건’이며, 미국이 서반구 내에서 압도적 군사 우위를 재확인하고 지역 질서를 장악하고자 하는 트럼프의 전략적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이런 전략이 남미 각국의 경제적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중국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약해 광물 수요가 제한적이므로, 남미 국가들이 중국과의 광물 거래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물 자원은 남미 국가의 ‘생명줄’과도 같고, 중국은 그들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협력 파트너다.”
한샤오펑 전 멕시코국립자치대학 공자학원 교수도 ‘관찰자망’에 쓴 글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손실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손실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단 트럼프가 한판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터질 모든 ‘난장판’은 결국 미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첫째, 베네수엘라가 혼란에 빠지고 군부가 군벌화하거나 내전이 벌어진다면 수백만명의 난민이 북쪽으로 향하게 돼 미국의 ‘이민 문제’는 더 꼬일 것이고, 둘째,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짓밟은 미국의 행동이 단기적으로는 남미 국가들을 위축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미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오히려 남미 국가들을 중국 쪽으로 더 기울게 할 것으로 봤다. 한샤오펑은 “미국은 남미 국가들이 바라는 개발과 인프라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몽둥이’만 들고 있다”면서, “그 틈이 바로 중국의 기회다. 미국은 항구를 폭격할 수는 있어도 철도는 깔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다”라고 말한다.
국제질서의 마지막 남은 부분까지 조롱하며 산산이 부숴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태가 중국의 대만 전략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트럼프의 이번 행동이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에서도 자칭 ‘애국주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미국이 불법적으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대통령을 납치할 수 있다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자국의 통일 주권을 보다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다” “중국도 특수부대를 투입해 라이칭더(대만 총통)를 체포하고, 즉시 대만 접수를 선언해 속전속결로 끝내면 된다”는 주장이 확산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단기간에 대만 전략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대만과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경제난과 실정으로 800만명이 자국을 떠나 난민이 됐지만, 대만은 탄탄한 첨단 기술과 경제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서두르지 않고, 우선 남미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향해 ‘중국은 미국과 같은 사악한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며,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대안’임을 강조하면서 영향력을 넓혀 가려 할 것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세계가 약탈적 제국주의 시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는 탄식이 세계 곳곳에서 나온다. 중국이 트럼프나 푸틴의 방법으로 대만을 ‘통일’한다면 국제질서는 완전히 붕괴하고 무법천지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은 트럼프의 행패로 미국의 신뢰가 붕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중국이 대만 문제를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해결’할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그때 미국이 중국의 행동을 비난할 명분은 이제 조금도 남지 않았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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