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
“해맑게 노래하는 길(은정)씨의 모습과 달리 객석은 촉촉했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여성 관객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길씨는 환자라는 느낌을 전혀 갖지 못할 정도로 활달했다.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마이크조차 제대로 쥐기 힘들었지만 혼신의 힘으로 가슴속 슬픔을 밝은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가수와 MC로 활동했던 자신의 인생을 차분히 돌아보고 ‘소중한 사람’ ‘높아만 가네’ 같은 히트곡을 선사했다.”
길은정은 이해 2월 22일 가수 편승엽과 결혼식을 올렸으나 9월 19일 이혼했다. 편승엽은 ‘빅쇼’에 나와 노래 ‘비나리’를 불렀다. “하늘이여 저 사람 언제 갈라 놓을 거요. 하늘이여 간절한 이 소망 외면할 거요.”
1997년 11월 2일자 30면. |
길은정은 3년 후 대장암을 이겨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소대심(大笑大心), 즉 크게 웃고 어차피 한 번 죽는 인생 집착하지 않으려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것이 비결이었습니다.”(2000년 3월 30일 자 45면)
암 투병기를 담은 책도 냈다. 길은정은 “평소 웃음이 많았던 게 병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스트레스는 엄청난 위력의 태풍과 같아 평소 스트레스 덜 받는 생활을 하는 게 너무너무 중요하다”(2000년 5월 16일 자 23면)고 조언했다.
2000년 5월 16일자 23면. |
편승엽과 결혼은 당초 암 투병 사실을 알고도 진행했고 이혼도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순애보’로 알려졌다. 그러나 길은정은 2002년 10월 이를 뒤집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편승엽은 ‘순애보’ 사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난 정신적·물질적 학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편승엽은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2년 여 공방 끝에 법원은 편승엽의 손을 들어줬다. 길은정에게는 징역 7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편씨가 ‘순애보의 주인공’처럼 생활하지는 않았더라도 사회에서 매장당할 만큼 파렴치범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편씨 가족들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받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길씨의 건강 상태 등을 감안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2004년 7월 8일 A11면)
암은 다시 재발했다. 이번엔 생명을 앗아갔다. 사망 전날까지 길은정은 원음방송에서 매일 진행하는 생방송 ‘길은정의 노래 하나 추억 둘’ 마이크를 잡았다.
2005년 1월 10일자 A13면. |
“길씨는 원불교의 원음방송 서울 본부장에게 “죽는 순간까지 마이크를 잡는 게 마지막 소망”이라고 말해왔고, 방송국 측은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길씨는 매일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방송에 모든 정력을 쏟았다. 길씨 언니가 방송국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방송 시작 4시간 전부터는 진통제도 맞지 않았다. 주사를 맞으면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졸음이 오기 때문이었다.”(2005년 1월 10일 자 A13면)
유언에 따라 수의 대신 1997년 ‘빅쇼’ 무대에서 입었던 미색 드레스 차림으로 경기도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을 치렀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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