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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사무직 ‘경력 학원’ 성업… 취준생과 퇴직 기자, 누가 더 불안할까?

조선일보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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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청년 일자리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학원을 세운다고?”

나이 든 전직 기자는 그렇게 되물었다. 후배가 학원을 말할 때 당연히 논술 학원을 얘기하는 걸로 이해했다. 과거에 은퇴한 기자들이 중고생이나 기자 지망생들을 상대로 논술과 작법 강사로 활동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큰 돈벌이는 아니었고, 이제는 AI 에이전트에 밀려 완전히 사라진 일자리였다.

“예, 형님. 학원입니다. 근데 하는 일은 그냥 예전에 저희가 했던 일이에요. 아주 전통적인 언론사를 세우는 거죠. 정확히는 언론사 중에서도 편집국만요. 편집국 만드는 데는 큰돈 안 들잖아요. 사무실 하나, 노트북 몇 대만 있으면 되죠.”

후배가 말했다.

“그게 왜 학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돈을 어떻게 벌겠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전직 기자의 질문에 후배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들어보니 허황된 것 같기도, 그럴싸한 것 같기도 했다.

“형님, 요즘 젊은이들 화이트칼라 일자리에 취직 못 하는 건 아시죠.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저연차 직원들에게 맡기던 단순 작업을 모두 AI 에이전트에 맡기게 됐어요. 일반 사무직뿐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처럼 자격증이 필요한 업종도 그렇죠. 저희가 몸담았던 언론계도 마찬가지고요. 세상 모든 기업이 사무직은 경력직만 뽑아요. 심지어 시민단체도 그래요. 일하는 법 모르는 젊은 애들이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되니까요.”

“거기까지는 다 아는 내용이야.”


“그래서 요즘 청년들이 사무직 자원봉사 자리를 얻으려고 경쟁하는 거 아세요? 시민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자원봉사원 공모할 때 ‘잡일 아니라 정식 사무직 일 시키고 일하는 법 가르쳐줍니다’라고 적으면 경쟁률이 몇백 대 일이래요. 청년들끼리 만든 ‘유사(類似) 기업’ 동아리도 많답니다. 자기들이 진짜로 회사를 만들면 직원에게 최저임금을 줘야 하니까, 동아리를 만드는 거죠. 그 안에서 AI가 없던 시절 대기업처럼 일을 한답니다. 서로 업무 평가도 하고, 퇴직자를 멘토로 영입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동아리가 매출을 발생시킬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모든 게 회사 놀이, 회사 흉내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무심코 맞장구를 쳤더니 후배가 말을 이었다.

“저희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생성형 AI가 퍼지기 전 시절, 딱 2010년대 중반 정도의 환경으로 편집국 사무실을 갖추는 겁니다. 거기서 청년들을 받아서 기자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언론인 경험이 있는 저희가 데스크가 되고요. 부서는 사회부, 문화부, 스포츠부, 편집부만 만들 겁니다. 이 청년들이 정부 부처 출입은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지금 설마 그게 학원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겠지?”

“학원 맞죠. 엊그제 대학 졸업한 신참들을 80점짜리 기자로 만드는 게 저희 일이었잖습니까. 저희가 그 일을 20년 넘게 했잖아요.”

“언론이 사양 산업이 된 지가 언젠데 그래. 요즘 누가 기자를 하겠다고 하나.”

“기자를 하겠다는 청년이야 없겠죠. 그러니까 포장을 잘해야죠. 이 언론사가 가르치는 건 저널리즘이나 취재 기법이 아닙니다. 기획하는 능력, 트렌드를 분석하는 능력, 사람들 만나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능력, 가지고 있는 정보들로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는 능력입니다. 이 학원에서 기획 기사를 쓰다 보면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온갖 돌발 상황 속에서도 마감을 지키는 책임감, 동료와 협업하는 노하우, 팀으로 일할 때의 자세, 거기에 각종 사무용 소프트웨어 기초 원리까지. 뭐랄까, ‘보편적 사무직 경력 학원’ 같은 거죠. 이름은 적당히 만들어내야겠습니다만.”

“돈 받고 회사원 코스프레를 시켜주는 건가?”

“코스프레보다는 임상시험이 더 나은 비유 같습니다. 요즘 애들 절박합니다, 형님. 어지간한 부모 빽 동원해도 인턴 자리 하나 못 잡는 시대예요. 제 생각에는 이건 학원비를 어떻게 책정하느냐의 문제 같습니다. AI한테 사업 타당성 조사도 시켜봤어요. 점수 엄청 높게 나왔습니다. 6개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수료증을 발급할 생각이에요. 회사 흉내 동아리 따위와는 전혀 다른, 진짜로 일한 경험이 쌓이는 진짜 사무실입니다. 기사라는 진짜 상품을 만들어내고, 그 상품의 질을 저희가 평가할 수 있어요. 청년들이 그 상품 제작 과정을 전부 체험하고, 어떻게 하면 더 질 높은 상품이 만들어지는지 이해하고, 질을 높이기 위해 진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나이 든 전직 기자는 자기 앞에 놓인 커피 잔과 물 컵을 보며 후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카페 로봇이 사뿐히 걸어와서 물 컵에 물을 채우고 갔다. 로봇은 주전자를 완벽한 각도로 기울였다. 우리가 젊을 때는 이런 일을 인간 아르바이트생이 했는데, 하고 전직 기자는 생각했다.

“아까부터 ‘저희’라는 말을 쓰던데, 이 학원 사업을 자네 혼자 하려는 게 아닌가 보지?”

“전직 언론인을 몇 명 모았죠. 초기 자본이 있어야 하니까요. 사무실과 집기 비용은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형님한테도 연락드린 겁니다. 저희는 5000만원씩 냈습니다. 형님도 참여하시죠.”

기자로 일하며 습득한 의심하는 버릇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직 기자의 머릿속에는 이 사업 아이디어의 목표가 청년들이 아니라 노인들의 돈 아닐까 하는 의혹이 일었다. ‘사기만큼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직업으로 남을 테지. 사기꾼들이 노리는 건 불안한 사람들이고.’ 전직 기자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청년들과 노인들 중 어느 쪽의 불안이 더 클지는 알 수 없었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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