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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의 窓] 권력 앞 ‘항소하면 손해’ 바이러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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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기자는 과거 형사 국선 사건만을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했다. 당시 검찰은 선고가 나면 으레 항소했다. 유죄가 나도 형량이 기준에 못 미치면 항소했고, 무죄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국선전담변호사는 “벌금 10만원을 부과받고 정식 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받아낸 사건도 검찰이 항소했다”며 “항소를 안 하는 검찰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나 서해 피격 사건의 ‘사실상’ 항소 포기는 이런 실무 관행에 비춰서도 매우 낯설다. 검찰은 서해 피격 사건에 대해 “항소의 실익을 고려해 (명예훼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에서 결과가 바뀔 가능성인 ‘항소의 실익’은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할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런데 법원은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와 국정원에서 다수의 특수 첩보와 보고서를 삭제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고의로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이 문제 되는 사건은 상급심에서 다퉈볼 만한 대표적인 경우다. 2심의 해석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이해충돌방지법을 좁게 해석해 결과적으로 민간 업자들이 수천억 원의 이익을 가져간 대장동 사건도 마찬가지다.

반면 법원이 증거 수집이 위법하다고 했거나, 법리상 범죄 성립이 안 된다고 하면 항소의 실익이 거의 없다. 이재용 회장이 기소됐던 ‘삼성 부당 합병’ 사건은 회사 서버 압수 수색 절차가 위법하다고 판단했고, 고위 법관들이 재판 개입 혐의로 대거 기소된 ‘사법 농단’ 사건은 법리상 범죄 성립이 안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이 사건들에 항소는 물론 상고까지 했다. 별건 수사로 얻은 증언에 대해 법원이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방법”이라고 질타했던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의 시세 조종 사건도 결국 항소장을 냈다.

이처럼 검찰은 ‘국가 형벌권의 정당한 행사’를 내세워 무리해 보이는 항소도 강행해 왔다. 그런데 최근엔 당연히 항소해야 하는 사건들까지 포기하고 있다. 하필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이거나, 이 대통령이 검찰을 비판한 사건들이다. 한 법조인은 “권력 앞에 ‘항소하면 손해’ 바이러스가 도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만일 그렇다면 검찰의 공소 유지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3심제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1심 판사는 신이 아니다. 공익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검사라면 잘못된 판결에 대해 당연히 시정을 구해야 한다.


검찰의 기계적 항소에 따른 인권 침해가 문제라면 차라리 ‘무죄판결 항소 금지법’을 만드는 게 낫다. 그러면 검찰도 “권력자 눈치 보고 항소 포기했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피고인도 사법 리스크를 벗어날 수 있다. 권력 앞에 작아지는 ‘항소의 실익’은 사법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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