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에이징 유재덕 |
나는 합법적인 칼잡이다. 30여 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주방에서 일했고 총주방장을 지냈다. 라틴어 pabulum(파불룸)은 ‘음식’ 혹은 ‘양식’이란 뜻이다. 오래 요리를 만들면서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리는 맛을, 음식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파불루머’가 되길 원한다. 화려한 요리사보다는 소박한 ‘음식가’가 되고자 한다.
며칠 전 읽은 책 ‘삶은 도서관’에서 ‘프라이드 에이징’이라는 말을 만났을 때, 오래 붙잡고 있던 고민 하나가 또렷해졌다. 오늘날 우리는 젊음을 ‘능력’으로, 노년을 ‘결핍’ 또는 ‘질병’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주방에서 오래 일해 보면 시간이 만드는 깊이가 결핍과는 무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식어가는 재료의 숨, 불 앞에서만 들리는 소스 팬 안에서의 작은 소음들. 경험이 주는 예민한 감각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하다. 이런 걸 대신할 계량기는 없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프라이드 에이징’이라는 단어는 보자마자 가슴에 들어왔다.
젊음에 매달려, 상실의 눈으로 뒤나 돌아보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온 날들을 받아들이고 나이에 걸맞은 책임과 품격을 지키려는 태도. 그런 것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나이 듦은 삶의 ‘자료’가 축적되는 일이다. 실패의 기록도, 배움의 문서도, 시간이 만들어낸 통찰도 쌓이고 또 쌓인다. ‘도서관 같은 노인’이 되고자 평생 애를 쓰다 세상을 떠나는 것만큼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인생이 또 있을까.
내 몸에도 ‘주방의 훈장’ 같은 흔적이 제법 있다. 오븐에 데인 팔뚝의 상처, 칼을 오래 잡아 생긴 굳은살, 무엇보다 불 앞에서 배운 침묵! 어쩌면 이런 흔적들 덕분에 나이가 든 나는 여전히 타인의 말을 잘 듣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말을 잃은 것이라기보다는, 경청의 태도를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어가는 음식이 가장 깊은 향을 내듯, 사람도 시간 속에서 숙성되며 제맛을 찾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상하지 않으려면 ‘순수’해야 한다. 음식도 사람도.
[유재덕 파불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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