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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유근형]‘동남아식 소스 비빔밥’… 짝퉁 한식당, 위협받는 ‘K푸드’ 붐

동아일보 유근형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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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열풍에 가짜 한식당 넘치는 佛

K푸드 붐, 파리 한식당 400개 육박… 급조한 정체불명 식당 속출

한식 이미지 훼손 우려… 韓人 직원 고용 中자본 한식당도

맛 인증제 도입 등 검토해야… 장류 등 식자재 유통 정부 지원 필요
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부의 한식당. 한국 길거리 음식을 판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왼쪽 사진). 하지만 내부는 후지산 등 일본풍 인테리어가 가득하다(오른쪽 사진). 고추장 대신 동남아풍 소스를 뿌린 비빔밥이 나오는 등 정통 한식과는 거리가 먼 음식들을 팔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부의 한식당. 한국 길거리 음식을 판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왼쪽 사진). 하지만 내부는 후지산 등 일본풍 인테리어가 가득하다(오른쪽 사진). 고추장 대신 동남아풍 소스를 뿌린 비빔밥이 나오는 등 정통 한식과는 거리가 먼 음식들을 팔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유근형 파리 특파원

유근형 파리 특파원

《2일 정오경(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앞 상업지구의 한식당을 찾았다. 한국의 거리 음식을 판다는 홍보 문구를 내세운 곳이었다. 가게 앞에 비치된 메뉴판에는 비빔밥, 불고기, 닭갈비 등 한국 음식들이 파리지앵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한국 식당이었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한국 스타일을 연상하고 가게에 들어섰지만 일본풍 인테리어 소품들이 가득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후지산이 그려진 대형 벽지가 가게를 장식했다.》


메뉴판도 달랐다. 첫 페이지에는 한국 음식들이 나열돼 있었지만, 두 번째 페이지부터는 일본식 라멘, 튀김 등 다른 나라 음식이 많았다. 일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아시아 나라 음식을 팔다가 한식을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이 강하게 풍겼다.

● 단무지 오이 들어간 비빔밥 파는 가짜 한식당

맛은 더욱 심각했다. 15유로(약 2만5000원) 하는 한국 대표 메뉴 비빔밥을 시켰는데, 고추장 대신 동남아풍 스리라차 소스를 줬다. “고추장 없느냐”고 물으니 티베트 출신 지배인은 “그게 뭔가?”라고 되물었다. 비빔밥 위에는 단무지, 오이, 두부 튀김 등 통상 비빔밥에 얹히는 재료가 아닌 것들이 즐비했다.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준 것도 한국 스타일과 거리가 있었다. 비빔밥을 어떻게 먹는지 기본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진 K치킨도 상상하던 맛이 아니었다. 시큼한 향이 강한 중국풍 튀김에 가까워 보였다. 분명 한식당에 왔는데, 한식이 아닌 음식들만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 식사를 하고 나온 한 프랑스 부부에게 “이곳의 음식이 한식이 아니란 걸 아느냐”고 물으니 “전혀 몰랐다. 다음엔 좀 더 전통적인 한식당을 찾아가야겠다”며 놀랐다.

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3구의 한 한식당. 서울의 식당이 연상될 정도로 한국식 인테리어를 하고 있지만 정작 운영은 중국인이 하고 있다. 맛과 품질은 한식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3구의 한 한식당. 서울의 식당이 연상될 정도로 한국식 인테리어를 하고 있지만 정작 운영은 중국인이 하고 있다. 맛과 품질은 한식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파리 13구에 위치한 다른 한식당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맛있다’를 의미하는 비속어(JMT)를 가게 이름으로 내세운 이곳은 외관만 보면 한식당처럼 보였다. 실내에 ‘어서 오십시오’ 같은 한국식 네온사인도 달려 있어, 겉모습만 보면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명동의 한 식당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주문한 음식들은 한식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김치찌개는 뜨거운 물에 생김치를 담근 듯한 맛이 났다. 자장면에는 생경한 닭고기가 토핑으로 들어 있고, 국물이 흥건했다. 춘장의 비린 맛이 여전할 정도로 조리가 100% 되지 않았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유승희 셰프는 “파리지앵들은 이 같은 음식이 한식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며 “프랑스 미식 시장에서 한번 형성된 이미지는 쉽게 수정되지 않는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한인 종업원 내세운 중국계 한식당도 등장

한류 여파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유럽 대륙을 강타하고 있다. 2010년대 수십 곳에 불과했던 파리 내 한식당은 최근 400여 곳까지 늘었다. 유럽 전체로 넓히면 한식당은 2000곳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한식에 대한 관심은 K푸드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K푸드 관련 수출은 130억 달러(약 18조 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10월 112억 달러(약 16조2000억 원)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7% 성장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시장은 전체 수출 성장세보다 가파른 11%대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류 콘텐츠의 확산과 맞물려 ‘건강하고 트렌디한 음식’으로 인식되면서 유럽 외식 식품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식 시장의 양극화다. 양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맛과 품질이 수준 이하인 ‘짝퉁 한식당’이 너무 빨리 늘고 있다. 단기간에 창업된 한식당들이 기본적인 조리 표준, 재료 이해, 위생 관리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유럽 시장에 왜곡된 한식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한식 붐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고, 나아가 한식 브랜드 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짝퉁 한식당들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한국인 중간 매니저를 내세우거나, 기존 한식당을 인수한 중국 자본의 식당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파리의 중국계 한식당들은 우버이츠, 딜리버루 등 애플리케이션을 적극 활용해 배달 영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마르세유, 리옹, 니스 등 프랑스 지방 도시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등 유럽 대도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기존 한식당을 운영하던 한인들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계 등 외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기존 한인 식당들이 매출 감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인증 스티커를 자체적으로 부착하는 등 각종 대책을 짜내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파리 한국인 밀집 지역인 15구에서 한식당을 운영 중인 한 교민은 “지난해 파리 시위 과정에서 한식당이 불타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며 “한식 특수를 교민들은 보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 한식 전문화 고급화 전략 필요

K푸드 붐을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선 전문화 고급화 등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뉴욕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파리에 진출한 돼지국밥 전문점 ‘옥동식’이 대표적이다. 국밥 메뉴에 집중하는 옥동식의 파리 지점에는 2일 영업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10시 반부터 대기줄이 서기 시작했다. 점심 영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대기자가 105명을 넘었다. 옥동식 셰프는 “한식당들이 메뉴 가짓수를 줄이고 한식 본연의 맛에 더 집중한다면 유럽 미식계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한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식자재 시장이 더 커져야 정통에 가까운 한식이 유럽에 소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리, 런던의 유명 한식당들은 고추장 참기름 간장 등 고급 식재료를 2∼3주에 한번 지인을 통해 핸드캐리로 공수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식과 프랑스 음식을 결합한 퓨전 음식을 하는 용석원 셰프는 “한식 재료가 부족해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며 “중식 일식처럼 양질의 식재료가 풍부해져야 정통에 더 가까운 한식을 유럽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증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파리, 런던, 베를린 등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민관 공동의 한식 맛 평가를 진행하고 맛집 리스트를 발표하거나, 공인 식당을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태국 정부는 2000년대 초 ‘타이 셀렉트(Thai Select)’ 인증을 도입해 해외 태국 음식점의 맛, 재료, 조리 기준을 관리했다. 인증 식당은 공신력을 얻으며 수준 이하 업장은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일본도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일본요리사협회 중심으로 품질 관리를 진행했다.

현지 셰프들을 대상으로 하는 김치, 장류, 육수 등의 단기 요리 클래스를 정례화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다. 유 셰프는 “사실상 파리 한식당계는 품질 관리를 방치하고 있다. 이제 규모에 맞게 정부와 민간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근형 파리 특파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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