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
자본도 기술도 없던 1960년대, 우리는 섬유·신발 등 노동집약적 사업으로 물꼬를 텄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선언하고 KIST와 KAIST를 설립하며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철강·조선·화학 분야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는 산업 고도화를 견인했다. 1980년대 가전 국산화와 반도체 투자는 3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진입하는 토대가 되었고, 1990년대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구축은 'IT 강국 코리아'의 초석이 됐다. 이어 2000년대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등 디지털 융합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한 우리는, 2010년대 이후 인공지능(AI)·바이오·이차전지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금, 이 강력했던 성장 엔진에서 경고음이 들려온다.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한계에 봉착한 시점과 정치가 과학기술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한 시점이 맞물린다. 탈원전 정책이 상징적 사례다. AI 시대에 반도체만큼 중요한 것이 '안정적인 전력'인데도, 전력 인프라를 확충해야 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는 외부 환경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경쟁력의 일부를 훼손한 자해적 선택의 결과였다.
그 사이 중국은 턱밑까지 쫓아왔다. 저부가가치 제조국 중국은 이제 우주항공·AI 등 여러 핵심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 경쟁자로 부상했다. 이는 단순히 인구와 자본의 힘이 아니다. 중국의 진짜 경쟁력은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 중심의 리더십과 정책의 연속성에 있다.
중국 지도부 다수는 이공계 엔지니어다. 기술을 이해하는 리더들이 장기 전략을 수립해 10년, 20년 단위로 밀어붙인다. 우리가 5년마다 정책 판을 새로 짤 때, 그들은 축적의 시간으로 기술 패권을 거머쥐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경쟁자가 아니라 의존자가 될 위험 앞에 서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차이나 쇼크'의 본질이다.
핵심 원천 기술과 공급망, 그리고 국제 표준을 누가 쥐느냐를 놓고 벌이는 기술 패권 경쟁은 총성 없는 '안보 전쟁'이 되었다. 기술 패권의 상실은 수출 감소나 성장 둔화의 문제를 넘어, 국가가 독자적인 전략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속국으로 전락한다.
이제 방향은 명확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과학기술 입국'의 위상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과학기술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할 '초당적 거버넌스'를 법제화해야 한다. 정권 부침과 관계없이 국가 백년대계를 지킬 방파제가 필요하다. 둘째, 이공계 인재의 공직 진출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정책 리더십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행정과 법률 중심의 관료 조직에 과학기술적 통찰을 지닌 인재들을 대거 수혈해, 국가 의사결정 체계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셋째, 관(官) 주도에서 '민간 주도형 혁신 생태계'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서포터가 되어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이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넓혀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원 빈국이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원은 사람과 기술뿐이다. 선배 세대가 피땀으로 일군 '기술 강국'의 위상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추월당해 추락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지금, 과거의 관성을 끊어내고 과학이 주도하는 '넥스트 거버넌스(Next Governance)'로 리셋(Reset)해야 한다. 이것이 2026년 우리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승부수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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