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
매년 가을,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애플 이벤트(Apple event)' 무대에 서는 팀 쿡 CEO의 손목에는 언제나 애플워치가 채워져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그의 발끝일지도 모른다. 그는 종종 아이패드로 특별 디자인된 나이키 스니커즈를 신고 등장하는데, 이는 단순한 패션 취향을 넘어선 고도의 전략적 행보다. 팀 쿡은 2005년부터 20년째 나이키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선임 사외이사(Lead Independent Director)'이자 보상위원회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시가총액 세계 1위를 다투는 기업의 수장이 왜 귀한 시간을 쪼개 나이키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일까. 한국적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급망 관리의 달인'으로 알려진 쿡의 전문 지식을 나이키에 전수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두 거대 기업의 생태계를 통합하려는 거대한 전략이 숨어 있다. 애플은 하드웨어 제조를 넘어 헬스케어와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고, 나이키는 단순한 신발 회사에서 피트니스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래서 애플은 나이키의 강력한 '팬덤'을 이식받고, 나이키는 애플의 '기술력'을 빌려 각 사의 특성에 적합한 강력한 디지털 피트니스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윈윈(Win-Win) 구조를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쿡이 나이키 이사회에 참여하여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러한 결실은 2000년대 '나이키+ 아이팟'부터 현재의 '애플워치 나이키 에디션'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AI와 데이터 협력도 강화하면서 이종 업종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애플도 팀 쿡이 나이키 이사회에서 읽어낸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헬스케어 사업에 반영하고 있다. 또한,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과 베트남을 핵심 생산 기지로 공유하는 두 회사는 이사회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와 물류 대란에 대한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팀 쿡이 나이키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은 글로벌 거대 기업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과 경영 철학의 공유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쿡은 나이키의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CEO(엘리엇 힐)를 새로 선임하는 등 구조조정과 전략 수정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순간마다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말 나이키의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급락하자 쿡이 사비로 300만 달러의 주식을 매수한 행보는 이사로서 '책임'을 시각화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나이키 이사회 멤버 및 경영진의 시장 내 주식 매입 사례 중 최대 규모였다. 쿡의 주식 매입 소식에 주가는 4.6%나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팀 쿡이 나이키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사외이사가 단순히 회의에 참석해 보수만 받는 자리가 아니라, 기업의 영혼을 공유하고 미래를 함께 하는 동반자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현직 CEO의 타사 사외이사 겸직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교수나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줄 수 없는 현장의 감각을 갖춘 '살아있는 경영 지식'을 전수하고 비경쟁 분야 간 혁신 아이디어를 수혈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사티아 나델라(MS)와 스타벅스, 메리 바라(GM)와 디즈니의 협력이 대표적인 예다. 나델라는 스타벅스 이사회에서 '클라우드 컴퓨팅'과 'AI를 통한 고객 데이터 분석' 노하우를 공유하며 스타벅스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이끌었으며, 바라는 디즈니 이사회에 합류해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의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전략을 자문했다.
반면, 본업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업무 과부하(Overboarding)' 우려가 상존한다. 수천 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시가총액의 글로벌 기업 CEO가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사 회의에 시간을 뺏기는 것에 대해 주주들은 극도로 예민하다. 또한 '이해 상충'의 리스크도 존재한다. 과거 구글의 에릭 슈미트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경쟁 심화로 애플 이사회에서 물러난 사례는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 겸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줬다. 나아가 CEO들끼리 서로의 이사회를 지켜주는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될 경우, 사외이사 본연의 임무인 경영 감시 기능이 무력화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도 CEO의 타사 이사 겸직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지금까지 미국 대기업(S&P 500) CEO들 사이에서 타사 사외이사 겸직은 '커리어의 훈장'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CEO 1명이 2~3개의 타사 이사회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최대 1개까지만 허용하거나 아예 금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S&P 500 CEO 1인당 평균 1.2개였던 타사 이사직은 최근 0.6개 수준으로 급감했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나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처럼 본업 외의 외부 사외이사직을 아예 맡지 않는 CEO들이 많아지고 있다. 블랙록이나 뱅가드와 같은 거대 자산운용사들도 "현직 CEO는 타사 사외이사를 1개 이하로만 맡아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한편 겸직의 문제를 넘어 지배구조의 독립성 이슈로,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증폭되고 있다. 세계 최대 은행 JP모건의 주주들은 제이미 다이먼 CEO가 이사회 의장직까지 겸임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다. "경영과 감시를 한 사람이 다 하면 위험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분리안은 부결되었지만, 주주들의 40%가 찬성표를 던지며 큰 압박을 가했다. 골드만삭스도 CEO가 의장직을 겸직하는 것에 대해, 주주들이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해야 하는데 CEO가 의장까지 맡으면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론 머스크는 '이사회와의 유착'으로 인해 소송을 당했었다. 2018년 머스크의 막대한 보상 패키지가 승인될 때, 주주들은 "이사회 멤버들이 머스크와 너무 친한 지인들이라 검토도 없이 승인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사외이사 제도는 '실무 경영인(C-Level)' 출신의 비중이 글로벌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태에서, 교수나 관료 출신들이 자리를 채우며 '거수기' 혹은 '외풍 막기'용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팀 쿡과 나이키의 20년 동행은 한국 기업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사외이사 구성의 전문성 패러다임을 법률·회계 중심에서 '실질적 경영 전문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독립성과 협력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사외이사는 지배주주와 지나치게 유착되어 있거나, 현실을 전혀 모른 채 비현실적인 주장만 내놓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면서도, 위기 상황에서는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실질적 영향력'을 갖춘 이사회가 절실한 것이다.
작년 상법 개정으로, 올해는 한국의 사외이사 제도가 법적 명칭의 변경을 넘어, 독립성과 전문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거버넌스(Governance) 혁신의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외이사'에서 '독립이사'로 단순히 명칭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을 지원하면서도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법적 요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오명을 벗고, 이사회가 주주 가치를 수호하는 독립적 의사결정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이는 결국 사외이사의 '역할'에 달려 있다. '누가 내 편이 되어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 '누가 우리에게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혁신적인 길을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026년 독립이사제로의 전환은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올라탈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팀 쿡의 스니커즈가 단순한 패션이 아닌 전략적 동행의 상징이었듯, 우리 기업들도 관행이라는 편안한 구두를 벗고 혁신의 현장을 누빌 '날카로운 스파이크'를 신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종식시킬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