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4월2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사실이 무시된 채 전세사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재판에서, 진범으로 의심받았던 남편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는 진술이 나왔다. ‘부실 수사’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언에도 검찰은 공소장 변경 등 교정 절차 없이 발달장애인을 피고인으로 세운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 김성은 판사 심리로 지난해 11월14일 열린 발달장애인 ㄱ씨의 전세사기 혐의 재판 증인신문 녹취록을 5일 보면, ㄱ씨 남편 ㄴ씨는 “ㄱ씨 사건과 관련해 내가 (기존 범죄에 대해) 판결(‘수사’를 잘못 말함) 받은 검찰에 여죄를 자백했다”고 증언했다. ㄴ씨는 “서울남부지검으로 ‘ㄱ씨와 내가 공범이고 (기존 사건과) 연관 있는 죄’라고 2024년 11월 서면을 보냈는데 사건이 (병합돼) 올라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며 “ㄱ씨를 처음 만나고 3개월 뒤에 지적장애인임을 알았다”고도 했다. ㄱ씨의 전세사기 범죄를 자신이 주도했음을 사실상 자백한 셈이다. 남편 ㄴ씨는 또다른 전세사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지적장애 등록을 한 발달장애인인 ㄱ씨는 수사 과정에서 장애 사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2024년 6월 전세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ㄱ씨는 2023년 11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자기 명의로 된 서울 강서구의 한 주택을 임대해주기로 계약하며 1억2천만원을 받고서, 이미 주택을 빌려줬던 세입자에게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사기)를 받는다.
중증 지적장애인인 ㄱ씨가 단독으로 벌인 범죄일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ㄱ씨는 홀로 사기 혐의 피고인이 됐다. 수사 과정에서 ㄱ씨의 발달장애가 인지되지 않은 탓이다. ㄱ씨는 경찰 최초 조사에서 발달장애인인지 확인하는 수사관 질문에 “아니요”라고 한차례 답했고, 이후 수차례 의심 정황에도 검찰 기소까지 장애 사실이 고려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은 수사 과정에서 진술 보조인의 조력을 받아야 하지만, 수사기관이 ㄱ씨 장애 사실 자체를 무시하며 이런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됐다. 부실 수사에 바탕한 기소였던 셈이다.
뒤늦게 ㄱ씨 사정을 알고 지원에 나선 변호인단은 남편 ㄴ씨의 법정 증언 외에도, 검찰은 이미 ㄱ씨가 발달장애인으로서 범죄에 이용됐을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거라고 본다. ㄱ씨 쪽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검찰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서울남부지검은 ㄱ씨와 ㄴ씨가 2023년 8월 충남 천안 지역에서 함께 저지른 또다른 전세사기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보고서 등을 최근 공람했는데, 이 보고서에는 “ㄱ씨는 ㄴ씨 지시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다는 범죄 사실이 기재돼 있다. ㄱ씨 변호인단은 애초 남편 ㄴ씨가 ㄱ씨를 범죄에 이용할 생각으로 허위로 혼인 관계를 맺었다고 보고, 혼인취소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울남부지검은 ㄱ씨의 단독 범행을 범죄 혐의로 담은 공소사실을 유지한 채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ㄱ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발달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부실한 수사로 이뤄진 기소인데다 남편의 자백까지 나온 상황인 만큼 검찰은 잘못을 인정하고 공소 취소 등 적극적인 교정 절차에 나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ㄱ씨와 ㄴ씨의 공모 관계 등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고, 수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