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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콤비, 형님이 있어 참 좋았습니다

조선일보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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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중훈 ‘나의 스타를 보내며’
고(故) 안성기 배우는 생전 여러 인터뷰에서 후배 배우 박중훈(60)을 ‘나의 최고 파트너’로 꼽았다.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박중훈이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본지에 전해왔다. 그가 구술한 내용을 정리했다.

형님을 처음 뵀을 때가 똑똑히 기억납니다. 제가 배우로 데뷔하기 전, 재수하던 1984년도에 명동 거리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는 모습을 봤지요. 우상이었던 분을 뵙고 너무 반가워 눈이라도 한 번 마주칠까 지나친 길을 되짚어 따라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4년 뒤인 1988년 영화 ‘칠수와 만수’를 처음으로 같이하게 됐을 때 이게 꿈인가 했습니다. 그 뒤로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 스타’(2006)까지 도합 4편을 형님과 함께했지요. 모두 저의 대표작이 됐습니다. 배우로서 이보다 더 감사한 인연이 있을까요.

형님은 성실함이라는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첫 번째 배우셨습니다. 보통 사람과 달라보이는 화려함이 앞서는 여느 스타와는 달랐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인간적이고 품위 있게 각인된 것은 형님이 보여주신 진심과 진실, 근면의 힘이 컸습니다. 형님께서 성인 배우로 본격적으로 복귀하신 1980년대 가장 뛰어난 한국 영화에는 늘 형님이 계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한국 영화에 대한 신뢰가 단단해지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셨지요.

저는 살면서 형님만큼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40년 뵙는 동안 단 한 번도 약속에 늦으신 적이 없지요. 저도 약속을 중시하는 편인데 형님은 저보다도 철저하셨어요. 시간뿐 아니라 신의를 늘 강조하셨습니다. 배우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도 자기 절제력과 신의를 어떻게 그토록 철저하게 지킬 수 있었는지, 형님,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안성기와 박중훈이 주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안성기와 박중훈이 주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형님은 저를 ‘최고의 파트너’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저는 발끝에도 못 미치는 사람입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도 늘 “안성기 선배 뒤만 따라가면 된다”고 하셨죠. 아버지께서 형님을 만나시면 허리 숙여 인사하며 “우리 중훈이 잘 부탁한다”고 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였는지 언젠가 형님께서 “네가 나한테 특별한 이유가 있어”라고 하셨죠. 형님과 콤비를 이루면서 배우로서 몇 단계 성숙했고, 과분하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형님께서 저를 특별하게 대해주신 덕분이란 걸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형님은 품위와 절제로 지켜온 배우의 삶이 무엇인지 수십 년 발자취로 보여주셨습니다. 언젠가 제가 “너무 지키려고만 하지 마시고 갑갑한 거를 좀 놓아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씀드린 거 기억하시는지요. 그때 형님께서 그러셨죠. “지키는 배우도 하나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지키기로 마음먹었어.”


촬영장에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을 배려하는 모습에도 제가 감동했지요. 사극 찍을 때는 투구와 가발이 무거워 잠시라도 벗고 쉬려고 하는 법인데, 형님은 내내 쓰고 계셨어요. 힘들지 않으시냐 물었더니 “내가 이걸 벗으면 분장팀이 다시 입히고 분장시키느라 얼마나 힘들겠어” 하셨지요. ‘남부군’ 찍을 때 기억하시나요. 엑스트라 100여 명과 계곡 얼음물로 들어가는 신이 있었는데, 주연은 잠시 나와 계셔도 된다 해도 계속 같이 남으셨지요. “나만 불을 쬐고 있으면 보조 출연자들 마음이 어떻겠느냐, 유대감이 있어야 영화를 같이 만들지” 말씀하셨지요. 정말로 형님에 대한 미담은 해도 해도 줄지가 않네요.

앞으로도 형님이 제 곁에 계신다는 마음으로 연기하고 살아가겠습니다. 그곳에선 편안하게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형님이 계셔서 제 인생이 참 좋았습니다. 형님이 계셔서 한국영화도 참 좋았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이자, 큰형님이자 대선배, 나의 스타를 보내며, 후배 박중훈 올림


정리=신정선 기자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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