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래와 요리로 영역은 다르지만 경연 방식으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노래는 <싱어게인 4>, 요리는 <흑백요리사 2>다. 경연인 만큼 라운드마다 생존자와 탈락자가 가려진다. 참가자들은 경연에서 이기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 최선을 다한다. 패배해서 도전을 멈추게 되는 가수 또는 셰프는 웃으면서 경쟁자에게 축하를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쓰릴 것이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을 보며 ‘서바이벌’이라는 방식에서 오는 잔인한 측면보다는 경연에서 탈락하는 참가자가 실패했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연출 방식이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박효남 셰프는 한국의 프렌치 요리계를 개척한 명장이지만 2인 1조 팀전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명패를 반납하고 떠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떨어진 사람이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라는 말이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았다.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기준에 맞추어 참가자들이 내놓은 결과물에 점수를 매기거나 생존과 탈락, 승리와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먼저 참가자에게 묻고 듣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시청자들 역시 어느 참가자가 탈락했다는 사실이 생존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참가자보다 열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탈락한 참가자도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었지만, 생존한 참가자가 ‘해당 라운드에서’ 조금 더 잘했을 뿐이다. 탈락한 참가자가 하필 그 라운드에서 미세한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승자가 보여준 것이 패자의 것보다 심사위원의 취향에 조금 더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을 보며 ‘서바이벌’이라는 방식에서 오는 잔인한 측면보다는 경연에서 탈락하는 참가자가 실패했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연출 방식이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박효남 셰프는 한국의 프렌치 요리계를 개척한 명장이지만 2인 1조 팀전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명패를 반납하고 떠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떨어진 사람이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라는 말이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았다.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기준에 맞추어 참가자들이 내놓은 결과물에 점수를 매기거나 생존과 탈락, 승리와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먼저 참가자에게 묻고 듣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시청자들 역시 어느 참가자가 탈락했다는 사실이 생존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참가자보다 열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탈락한 참가자도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었지만, 생존한 참가자가 ‘해당 라운드에서’ 조금 더 잘했을 뿐이다. 탈락한 참가자가 하필 그 라운드에서 미세한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승자가 보여준 것이 패자의 것보다 심사위원의 취향에 조금 더 맞았을 수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일정한 조건하에 설정된 가상의 세계다. 그 안에서 참가자가 보여주는 행동이나 발언을 가지고 현실 세계의 리더십이나 경영을 얘기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예능의 트렌드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욕구를 상당히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시청률과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예능은 현실을 추종하는 보수적 장르일 수밖에 없고, 시대를 선도하기보다 지금 시대의 추세에 부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방식이지만 탈락자를 낙오자로 그리지 않는 예능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호평을 받는 이유는 결국 사람들이 그런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뽑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떨어뜨리는 것이 본질인 ‘오디션’, 흑수저와 백수저를 구분하고 출발하는 ‘계급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측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벌어지는 경연은 현실 세계의 경쟁이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받은 순위가 나중에 가수로서 인정받는 정도를 결정하지도 않고, 중도에 탈락하든 아니면 우승을 하든 셰프들은 스크린 밖에 있는 현실의 업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진짜 경쟁은 그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의 패배자를 낙오자로 보지 않고 그 노력을 합당하게 평가하는 현상이 가상의 예능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은메달을 받은 선수, 세계 2위라는 업적을 기록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하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심지어 메달을 받는 순위에 들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으로 선수들을 응원한다.
한국 사회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할 것이다. 자원도 별로 없는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여건 때문인지 아니면 굴곡진 역사를 거쳐 살아남은 한국인의 마음에 경쟁이 각인되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치열한 경쟁이 후진국인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발전과 혁신을 낳는 경쟁을 긍정하는 것과 패자를 낙오자로 보지 않고 그가 들인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는 남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보상을 받게 된다는 현실과 패자에게도 한 번의 패배가 끝이 아니고 다른 길이 있다는 대안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말한 것처럼 “최고의 지성은 한꺼번에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떠올리면서 둘 다를 포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며 경쟁할 기회를 열어주고 승자의 성과와 보상을 인정하되, 동시에 패자에게도 노력에 대한 인정과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예능이 아니라 현실에서.
유정훈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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