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세상을 떠난 ‘국민 배우’ 안성기가 2012년 1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웃고 있다. |
혈액암과 투병하던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한국영화협회에 따르면 안성기는 이날 오전 9시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만 5세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했다. 배우 겸 영화제작자였던 아버지 고 안화영씨를 통해 우연히 이뤄진 데뷔였다. 김기영 감독은 캐스팅한 아역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자 <황혼열차>의 기획자였던 안씨에게 ‘아들을 데려와보라’고 말했다. 3형제 중 둘째 안성기는 곧잘 연기를 해냈고, 이후 섭외가 꾸준히 들어왔다.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배우 안성기. 연합뉴스 |
7세에는 <10대의 반항>(1959)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중3 때 <얄개전>까지 10여년간 영화 70여편에서 아역 배우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연기와 멀어졌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그는 ROTC 출신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다시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20대 중반부터였다. 4년 가까운 무명 생활 끝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에서 말을 더듬는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을 맡으면서 성인 연기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인은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자신인상을 받았다.
1980년대 한국 영화사는 고인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 감독 등 거장뿐 아니라 이명세, 박광수, 장선우, 강우석 등 당시 젊은 감독들의 작품에 두루 출연했다. 특히 배창호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13편을 함께했다.
기쁜우리젊은날. 안성기 황신애 |
배우 아버지 영향…만 5세 때 데뷔
라디오스타 등 박중훈과 명품 콤비
영화 200여편 출연 ‘캐릭터 만물상’
정부, 금관문화훈장…마지막 예우
고인은 배우를 ‘딴따라’로 부르던 1970~1980년대 초 주제 의식을 갖춘 영화들에 많이 출연했다. 배우가 더 존중받는 직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까다롭게 작품을 골랐다고 한다. 노골적인 베드신이 있는 영화는 찍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그는 사생활에서도 구설수 없이 겸손하고 절제력 있는 모습으로 귀감이 됐다.
1990년대 이후 대표작은 안성기·박중훈 콤비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한국 영화 사상 첫 천만영화 <실미도>(2003) 등이다. <하얀 전쟁>(1992), <태백산맥>(1994), <부러진 화살>(2012) 등 사회성 있는 작품에도 활발히 출연했다. 영화 200여편에 출연한 그는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안 해본 배역이 없는 ‘캐릭터의 만물상’으로 불렸다.
특히 박중훈과 함께 찍은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2006)는 고인이 “잊을 수 없는 작품”이자 “나와 닮은 캐릭터”라고 자주 언급할 만큼 특별히 애정을 품은 작품이었다. 2022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우울한 캐릭터보다 밝고 희망적인 역할이 마음에 들고, 늘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중훈은 자신의 에세이 <후회하지마>에서 “선생님을 물로 비유하자면 따뜻한 온도의 물이라 얘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라디오스타 |
고인은 영화계 주요 사안에 목소리를 낸 어른이기도 했다. 2000년부터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을 하고, 2006년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0년에는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원회’의 일원으로 ‘영화 도서관’인 시네마테크 건립을 촉구했다.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23년 4·19 민주평화상을 수상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발병 후 바로 치료를 시작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병이 재발하며 다시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고인은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고 늘 밝혀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그는 영상을 통해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면서도 “새로운 영화로 찾아뵙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노량: 죽음의 바다>(2023)에 출연했는데, 짧지 않은 시간 분장하고 30㎏에 육박하는 갑옷을 입은 채 촬영에 임하는 등 연기 열정을 놓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고인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된다. 배우 이정재, 정우성 등 영화인들이 운구로 고인의 마지막 길에 함께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소영씨와 아들 2명(다빈, 필립)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
배우 안성기.연합뉴스 |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