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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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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말 서울 은평구의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 문성호 편집장은 자신을 윤 어게인(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이라고 주장하는 중1 학생을 만났다. 학생은 “계엄이 왜 내란인지 설명 가능하냐”며 날 선 질문을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보냈고 문 편집장은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했다. 그들은 마주 앉아 대화했다. 문 편집장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묻고 또 들었다. 알고리즘 속에 갇혀 있던 학생은 3시간 대화 끝에 “계엄은 내란이 맞다”고 인정했다.

불법계엄 이후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가 커졌던 2025년이 지나고 2026년이 왔다. 면밀한 사실 확인을 통해 절제된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 생각하지만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 극단적인 주장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 과연 사실의 접점이 자리할 곳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토끼풀 기자들은 보여준다. 접점이 없기에 더더욱 다가가 들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는 앨리 러셀 혹실드의 책 <도둑맞은 자부심>의 메시지와 닿아 있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사회학자인 혹실드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반대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무려 7년간 켄터키주 루이지애나의 티파티 지지자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주민들은 환경오염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환경 규제에 반대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했으면서도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에 반해 투표하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혹실드는 그들의 이야기를 오래 들으며 이들의 심상에 ‘수치심’과 ‘도둑맞은 자부심’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탄광촌이었던 마을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뒤로 밀려나게 한 것은 산업 변화였지만 이들이 보기에 정부는 흑인, 이민자, 여성 등 새치기한 사람들을 도울 뿐이었다. 그들은 삶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도둑맞았다고 느꼈다. 이후 그들을 기다린 건 수치심이었다.

광부의 손자인 40세 남자는 해고 통지서를 받아든 한 남자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상사를 탓했다가 정부 감독관을 미워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대기청정법에 화살을 돌렸다가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까지 비난한다. 그러다 실업급여가 바닥나면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괴감 이후에 도착하는 감정이 수치심이다. 아내가 시급 9달러 일자리로는 식비를 댈 수 없다고 했을 때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에서 지역 사람들을 ‘무식한 사람’ ‘인종주의자’로 모욕하는 글을 읽고 수치심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혹실드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진 않았다. 나 또한 그랬지만, 이들의 마음에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자리했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 이 감정을 모른 채 논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었을까. 혹실드의 성취는 7년여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결과다. 새해에는 우선 마주 앉고 말을 건네고 귀 기울여 듣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혹실드는 취재원의 e메일을 소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여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나누면 어떨까요?” 진보 학자와 보수 지지자들은 그렇게 식탁에 둘러앉기로 약속한다. 이미 심리적 내전 상태인 한국 사회 또한 마주 앉아 서로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임아영 정치부 차장

임아영 정치부 차장

임아영 정치부 차장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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