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의장이 2021년 3월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상장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최혜정 | 이슈부국장
“직원 800명의 행복이 그들의 가족 3000명의 행복을 이끌어냅니다. 이들이 느낀 행복은 다시 고객과 사회로 퍼져나갈 겁니다. 이것이 쿠팡이 만들어나가고 싶은 기업의 모습입니다.”(2013년 1월 ‘한국경제’ 인터뷰)
업력 2년8개월 벤처기업 ‘쿠팡’의 김범석(당시 35살) 대표에게 ‘단시간에 기업을 키운 비결’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기업의 목표는 ‘성장’이 아닌 ‘행복’이고, “사회 행복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면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쿠폰이 팡팡 터진다’는 뜻의 사명에서 알 수 있듯 애초 할인쿠폰 중개 소셜커머스로 시작한 쿠팡은 2010년 5월 창사 이후 15년째에 연매출 41조원(2024년 말 현재)에 이르는 대표적 유통·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1명이 ‘와우 회원’인 현재,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도록 만들겠다던 김범석의 꿈은 이뤄진 듯 보인다. 다만 13년 전 30대 젊은 기업인이 설파했던 ‘행복론’을 대체한 것은 죽음의 일터라는 오명, 몸집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허술한 내부 통제, 그리고 ‘글로벌 시이오 봄킴’의 무책임이다.
지난달 국회에서 잇따라 열린 쿠팡 개인정보 유출 청문회는 쿠팡의 ‘대국민 선전포고’를 공식화하는 자리였다. 창립자이자 의사결정권을 쥔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의장 대신 출석한 해롤드 로저스 신임 대표의 대응 방식은 쿠팡의 향후 전략을 가늠하게 한다. 대관 업무를 총괄하던 박대준 대표가 사임하고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최고법률책임자인 로저스 대표가 선임된 것은 쿠팡이 앞으로 벌어질 정부와의 ‘전투’에서 철저히 법리로 다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청문회 내내 시종일관 질의 내용과 관계없는 동문서답, 자료의 진위를 의심케 하는 ‘메신저 공격’, 몰아붙이는 청문위원들에게 “그만합시다”(enough)로 응수하는 적반하장 등은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투지의 다른 표현이다. 쿠팡은 청문회 닷새 전 개인정보 유출 ‘자체 조사’를 기습 공개하면서, 유출 정보가 3000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자체 조사가)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셀프 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도, 1조7000억원 규모의 ‘쿠폰 보상’을 서둘러 내놓은 것도 모두 미국에서 제기된 집단소송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 내 분쟁 대비가 급한 나머지, 한국 정부와의 전면전 따위는 불사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오만은 고객들이 ‘쿠팡 생태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소비자는 와우 멤버십 하나로 로켓배송과 음식 무료배달, 콘텐츠 시청 등을 두루 이용할 수 있다. ‘탈팡’ 한다는 것은 그저 온라인 구매 플랫폼을 바꾸는 것을 넘어, 무료로 시청하던 ‘해리 포터’ 시리즈를 포기하고 음식 배달에 건건이 배달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고객 만족’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쿠팡은 수억건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들고 노동자의 가장 빠른 동선을 계산해왔다. 김범석 의장이 쿠팡을 단순한 유통·물류기업이 아닌 구글·아마존과 같은 테크기업이라고 자부하는 이유다. 이런 혁신의 실험에 빠져 있는 것은 ‘사람’이다. 최고의 효율성을 계산하는 쿠팡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생산성 목표와 이를 위한 최적의 동선만 내놓을 뿐, 노동자 개인이 매일 전력을 다하는 게 가능한지,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안전하게 꺼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2020년 경북 칠곡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장덕준(당시 27살)씨가 생전 “쿠팡은 우리를 도구로만 봐요”(‘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라고 푸념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범석 의장이 “시급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할 리 없다”(전 개인정보보호 최고책임자와의 메신저 내용)며 산재 은폐에 골몰하는 사이, 쿠팡은 노동자들이 스러져가는 ‘산재 공장’ ‘죽음의 일터’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로켓배송을 위한 ‘부품’ 정도로 치부하는 현재 모습이 13년 전 김범석 의장이 그렸던 ‘행복’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찬사의 유효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idun@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