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가 ‘신우파의 언어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주최한 제19회 학술 발표회가 지난 12월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리고 있다. 발표자들은 한국·미국·일본의 신우파 집단의 주장과 정서를 그들의 ‘언어’로 분석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신동일 |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정치인의 사진은 늘 민감하다. 재난 현장에서 미소만 보여도 “경박하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으면 “연출된 진정성”이라는 공격이 뒤따른다. 운동화를 신으면 ‘보여주기식 쇼’가 되고, 구두를 신으면 ‘현장 감각이 없는 권위주의’가 된다. 사진 속 장면은 찰나의 기록일 뿐이지만, 그 위에 얹히는 의미 부여는 언제나 과잉이며 때로는 폭력적이다.
이러한 ‘기호의 전쟁’은 이제 우리 정치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정치인의 식단, 옷차림, 몸짓 하나는 정책적인 논의를 압도하는 정쟁의 소재로 소환된다. 된장찌개나 컵라면 사진은 ‘서민 코스프레’로 비난받는데 한우 사진을 올린다면 ‘특권 의식’의 증거가 될 것이다.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 것이 경망스럽게 보일 이유도 없고 민소매 원피스와 슬리퍼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얼마든지 ‘그들’을 향한 ‘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재료가 된다. 기존의 분노 위에 새로운 분노를 덧붙이는 연료로 작동하면서, 텅 빈 기표는 그렇게 힘을 얻는다.
미디어가 현실을 특정 방식으로 ‘부호화’하여 메시지를 만들면, 서로가 속한 진영의 문법에 따라 그것은 편향적으로 ‘해독’되고 소비된다. 이때 발생하는 정치적 힘은 기호 자체의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편’끼리 비슷하게 기술하고, 해석하고, 공유한다는 동질감의 확인 절차를 거치며 그 위력은 비로소 완성된다. 기호는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라기보다 집단의 결속을 확인하는 정치적 신호로 기능한다.
사실보다는 해석이, 실재보다는 이미지가 우위에 서는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대가 정치권에서 가장 열심히 구현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따져 묻는 노력이나 정책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설 자리를 잃는다. 대신 “저 기호가 내 기분을 상하게 했는가”, “저 장면이 우리 진영을 불편하게 만드는가”라는 감정적 호불호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정치적 논쟁은 감정의 언어로 재편된다.
‘기호의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두 갈림길을 만난다. 하나는 침묵과 회피의 길이다. 논란이 될 만한 기호를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공적 영역에서 말을 거두는 탈정치적 선택이다. 다만 갈등을 피하는 만큼 공론장을 비워 두는 결과를 낳는다. 다른 하나는 더욱 치열하게 진영 논리에 가담하는 길이다. 자기편의 기호는 ‘진심’이며, 상대편의 기호는 ‘위선적 연출’로 낙인찍는다. 대립은 심화되고, 사회적 피로는 누적된다. 확증편향의 정치만 남는다.
다행히 언어의 사회정치적 속성을 연구하는 나는 거기서 샛길 하나가 보인다. 그것은 기호를 둘러싼 싸움에 무작정 가담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기호가 어떻게 정치적 자원으로 동원되는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사진 하나, 몸짓 하나가 왜 그렇게 쉽게 분노의 표적이 되는지, 그 분노는 어떤 방식으로 조직되고 증폭되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렇게 질문할 때에야 비로소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선명해진다.
언어와 기호는 결코 중립적이거나 투명한 도구가 아니다. 언제든 정파적일 수 있고, 권력의 의지를 담고 있다. 교실 밖 세상에서는 그렇게 단어 하나, 사진 한장을 두고 사생결단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안타깝게도 교실 안의 언어는 그저 갈등 없는 ‘순둥순둥한’ 의사소통의 도구에만 머물러 있다.
언어가 어떻게 권력으로 작동하고 배제를 정당화하는지 가르치지 않는 미디어 리터러시나 시민 교육은 겉돌 수밖에 없다. 기호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 학생들은 자칫 ‘상대 진영의 가짜 뉴스 찾는 법’만 배우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 교육의 희생자가 될 위험이 크다. 기호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의 정치에 동원되고, 이미 짜인 진영 논리를 재생산하는 소비자가 되기 쉽다.
싸워야 할 가치들이 산적해 있다. 싸울 땐 싸워야 한다. 민주주의는 갈등까지 먹고 자란다. 다만, 싸우지 않아도 될 일에 정치적 힘을 낭비하며 정작 싸워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왜 이토록 서로의 사소한 기호에 분노하는지, 그 분노가 누구에 의해 기획되고 소비되는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텅 빈 기표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삶의 고통과 희망을 논의하는 정치,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교육적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