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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 별세...그가 남긴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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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세나 앵커, 정지웅 앵커
■ 출연 :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특보]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배우 안성기 씨가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관련 내용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와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성기 씨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7일째였던 걸로 알려졌는데 앞서 음식을 먹다가 기도에 걸려 이송됐었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지난달 30일에 자택에서 음식을 드시던 중에 기도에 음식물이 걸리게 되면서 병원으로 이송이 됐고요. 그동안 심정지 상태로 이송됐었습니다. 그런데 위중했기 때문에 중간에 또 오보가 나기도 했는데요. 유가족이 보는 상황에서 영면에 들어간 것으로 공식 발표됐습니다.

[앵커]

고인은 과거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었는데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 다시 재발했다고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2019년에 혈액암 판정을 받았고요. 암투병 이후에 1년 만에 또 완치됐다는 발표도 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또다시 재발했다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병 중에 부산영화제를 포함해서 예를 들면 대종상 공로상도 수상했었고 그리고 민주평화상 시상식에도 나왔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완치를 하면서 복귀하는 거 아니냐, 이런 평가들이 많았고 본인도 복귀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앵커]
고인의 투병 소식은 뒤늦게 알려졌는데 왜 투병 소식을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던 걸까요?

[김헌식]
평소에 민폐를 끼치는 걸 굉장히 삼갔던 고인의 성향 의지도 있었고요. 팬들이 많이 걱정을 하기 때문이고 또 지인들이나 동료, 선후배 배우들에게 많이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 복귀할 거라는 강한 의지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런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빈소는 어디고 일반인들도 조문이 가능한가요?

[김헌식]
일단 조문하실 수 있는 곳은 두 곳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울 성모병원 같은 경우 빈소가 있는데 이곳은 평소에 안성기 배우가 1억 원 정도의 기부금을 기증했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충무로에 영화인센터가 있는데 여기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엽니다. 그래서 오후 4시부터 일반 팬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 참조하시면 좋겠고. 성모병원에서는 박상원 씨가 처음 빈소를 방문해서 추모하고 또 고인에 대한 애틋한 존경의 뜻 그런 것을 밝히는 모습도 보여졌습니다.

[앵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고 하는데 이건 어떤 건가요?

[김헌식]
영화인장은 협회나 단체에서 하는 게 아니고요. 예를 들면 영화감독협회, 배우협회가 따로 직능단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자들이 장례위원회를 구성을 하게 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화 발전에 기여했고 또 국민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아온 감독, 배우들에게 장례 절차로써 치러지는 되는데요. 그 사례로서 2022년 강수연 배우가 있었고 남궁원 배우, 그리고 최근에 김지미 씨도 영화인장으로 치렀습니다. 그런데 3일장이 아니고요. 5일간 치러지기 때문에 9일 발인하게 되고 오전 6시에 발인이 있게 됩니다. 장지는 양평으로 예정된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앵커]
국민배우로 불린 안성기 씨. 아역배우로 데뷔한 뒤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데뷔 때의 모습, 한 번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렸을 때 모습인데도 얼굴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평론가님은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김헌식]
일단 앞서서 나왔던 작품은 1959년의 10대 반항입니다. 이때 이 작품에서 소매치기를 했어요. 7살이었고요. 이 영화가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아역연기상을 줬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상 해외에서 영화상을 받은 게 최초예요. 그러니까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고. 개인적으로는 2006년의 라디오스타가 인상적입니다. 박중훈 씨가 가수로 나오는데 매니저인 안성기 씨한테 형 돌아오라고 울먹이는데, 그때 김밥을 먹으면서 박중훈 씨가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돌아오죠. 그런데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됐는데. 개인적으로 종이꽃이라는 작품이 인상 깊습니다. 2020년 작품인데 장의사 역할을 하거든요. 종이꽃은 상여에 달던 꽃이에요. 그래서 죽음을 앞두고 누구라도 공평하게 종이꽃을 달아주는 우리 장례 문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각별한. .. 이 작품이 휴스턴영화제에서 작품상과 함께 안성기 씨가 연기상도 받았었거든요. 이제는 종이꽃을 안성기 씨에게 달아줘야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앵커]
고인의 작품활동 말고도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참여를 해 왔는데요. 2000년대에는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단장도 맡았는데, 당시 그림 함께 보고 오시죠. 작품 외의 활동도 저렇게 적극적으로 한 안성기 씨의 모습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헌식]
배우의 사회적 참여인데 그걸 항상 하셨던 건 아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는 한국 영화산업이 살아야 우리 한국 영화 작품도 살고 배우도 살 수 있다라고 하는 문제의식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굵직한 영화제 관련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셨고. 또 영화를 합법적으로 다운로드 받는 것에 대해서도 저작권 인식 차원에서 활동도 많이 하셨고 또 기부활동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영화인의 사회적 참여, 그런 것이 뜻하는 의미를 이런 것들을 많이 남기셨던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고인이 영화계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어떻게 보세요?

[김헌식]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이렇게 성장해 온 데는 안성기 씨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보고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안성기 씨는 거지부터 소매치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모든 역할을 하면서 국민들이 보고 싶은 역할들, 또 내용들을 많이 보여줬다는 거죠. 사극에서부터 현대극까지도. 그렇기 때문에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렇지 않고 국민들을 위한 서번트, 봉사자였다는 말을 드리고 싶고 자칫 우리가 유명해지는 셀럽이 되면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안성기 씨는 끝까지 영화인, 국민들을 위한 작품 활동이 무엇인지 잘 보여줬기 때문에 영화인 활동, 사회 참여, 우리의 K콘텐츠의 밑바탕 그런 정신이 무엇인지 잘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와 함께 고 안성기 씨의 생애에 대해서 짚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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