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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산재와의 전쟁이 키운 '카르텔'

이데일리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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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규제·처벌 위주의 강경책, 전관·로펌들만 희희낙락
시스템 개선엔 도움 안돼…산업안전정책 재설계 절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현 정부 출범 이후 사망 재해가 크게 늘고 있다.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2025년 3분기를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명 늘어난 것으로 발표됐지만 공식 통계이자 객관적인 산재보상 대상 사고사망자는 58명이나 늘었다. 질병사망자까지 포함하면 168명(10.7%)이나 증가했다. 산업안전에 행정과 민간 모두 엄청난 자원을 투입하고 사망재해 감소요인이 많은데도 사망재해자가 급증하고 있는 건 예방 시스템이 기능부전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이러한 현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제재 강화와 거친 규제에 초점을 맞춘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최근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모두 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내지르기’식 법안 일색이다. 가뜩이나 문제 많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체계와 법리에 어긋나는 누더기 법으로 만들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이런 엉성하고 무책임한 입법으로 산업현장과 일선행정기관에는 진정성과 헌신이 실종되고 체념과 허무, 냉소가 지배하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법철학자 율리우스 헤르만 폰 키르히만은 “조잡한 실정법이 제정되면 이로 말미암아 튼튼한 나무를 버리고 썩은 나무를 먹고 사는 벌레가 우글거리게 된다”고 역설했다. 예측하고 이행하기 어려운 산업안전법제는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집행에 멍석을 깔아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지대 추구를 위한 짬짜미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공포에 휩싸인 기업들은 예방보다는 감독·처벌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동부 출신 전관을 채용하거나 전관이 있는 로펌, 컨설팅 기관을 찾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예방에 대한 전문성이 태부족하다는 점이다. 예방에 들어갈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면서 자원배분이 심하게 왜곡되고 안전호가 산으로 향하고 있다. 대형 로펌과 컨설팅 기관은 예방이라는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독을 들이고 공포 마케팅으로 안전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일부 근로감독관과 노동부 출신 노무사, 컨설팅 기관 간에는 작업중지명령 해제와 안전보건진단명령과 같은 행정처분을 둘러싸고 검은돈까지 오간다는 것은 산업현장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동부의 막무가내 권한이 현직과 전관의 비정상적 유착과 부패의 고리가 되고 있는 건 감사 기능의 부재와 함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조장하는 조잡한 법제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카르텔은 학계에까지 침투한 지 오래다. 학계는 공공기관의 먹거리로 전락한 부실한 정부 평가와 각종 심의의 들러리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안전에 대한 전문지식도 사명감도 없는 자들이 교수 타이틀을 달고 정부의 투박한 정책에 영합하거나 편승하는 행태는 장사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안전을 망치고 있다는 인식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일부 학교는 벽돌 찍어내듯 석·박사 학위를 남발하며 안전을 희화화하고 있다.


마크 트웨인은 “무엇을 몰라서 곤경에 빠지는 게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곤경에 빠진다”고 일갈했다.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인지적 게으름과 오만에 터 잡은 착각이 화근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안전원리를 도외시한 규제와 겁박으로 기업을 몰아붙이면 산업안전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지와 오만이 결합한 착각의 일종이다.

정부의 이러한 착각이 산업현장을 예방과 공정이 사라진 카르텔로 멍들게 하고 있다. 산업안전 선진국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산업재해 지표가 제재 일변도의 정책 방향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메타인지를 하지 못하고 예방 시스템 정비를 외면한다면 카르텔에 기생하는 자들에 의한 안전 오염과 자원배분 왜곡은 목불인견 수준이 될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는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한 산업안전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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