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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중동천일야화] 정치가 종교에 포획된 이란, 안보·경제 동시에 와르르

조선일보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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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부국에 인프라도 좋지만 극한 경제난으로 청년 시위 확산
神政 체제 집착하며 국제사회 제재 감수… 이대론 버틸 수 없다
지난달 29일 이란 테헤란에서 시위대가 다리 위를 행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이란 테헤란에서 시위대가 다리 위를 행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란이 심상찮다. 혁명 4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3년 전 이곳에 썼던 글의 첫 문장이다. 숫자만 46년으로 바뀌었을 뿐 이란은 여전히 심상찮다.

이번 겨울, 테헤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바자르 상인으로부터 시작된 시위는 대학생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이란 곳곳에 확산 중이다. 이스파한을 거쳐, 페르시아 제국 역사의 심장 같은 시라즈와 심지어 체제의 중심지인 시아파 성직자들의 도시 곰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저항이 격화되면서 새해 초 사망자 7명이 발생했다. 이번 시위가 3년 전과 다른 점은 동기다. 그때는 히잡 불량착용을 이유로 의문사한 여성에 대한 애도가 분노를 촉발했다. 이번엔 경제난 때문이었다.

지난해 이란 리알화의 화폐 가치는 70% 가까이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은 40%에 육박했고 일부 생필품과 필수의약품 가격은 60% 넘게 치솟았다. 그동안 이란 경제의 추락세는 악화일로였다. 10년 전 이란핵합의 타결 당시 달러당 3만2000리알이던 화폐 가치는 작년 말 142만리알까지 곤두박질쳤다. 세입이 줄자 이란 정부는 세금 인상을 추진했다. 빈곤층 보조금도 줄였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늘어난 빈곤층은 더 힘들어졌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이란은 이럴 나라가 아니다. 애초부터 가난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나라의 잠재력은 중동에서 손꼽힐 정도다. 세계 최대 자원 부국이다. 미국 EIA는 이란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1200조 입방피트(TcF)로 추정한다. 러시아에 이은 세계 2위 부존량이다. 원유 매장량은 2086억배럴로 세계 4위권이다. 석유와 가스만 내다 팔아도 남부럽지 않게 살 만하다. 부존자원뿐인가? 제조업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자동차 생산 능력을 가졌다. 자동차는 석유와 가스 부문에 이어 국내총생산의 10%에 달하고 노동력의 4%를 차지하는 세 번째 주요 산업이다. 항공기 정비 분야는 러시아와 중국도 협력을 원할 만큼 뛰어나다. 중동에서 이 정도 제조업 기반을 가진 나라는 없다. 인적 자원도 만만찮다. 9000만 인구 대국으로 교육열이 높고 고등교육, 특히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 활발하다. 이란 핵문제는 역설적으로 이란 물리학자들의 수준을 방증한다. 통신 인프라도 좋다. 2023년 기준 1억5275만대의 모바일폰을 보유하고 있어 인구 대비 보급률이 179%에 달한다. 정부의 정보 통제는 엄격하고 가혹하나 국민의 인터넷 활용도는 여느 서방 국가 못지않다. 무엇보다 4년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비교적 큰 탈 없이 하고 있다. 의외의 결과도 속출하곤 한다.

이쯤 되면 적어도 G20에 들 만한 잠재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시장에서 우유나 치즈 한 팩 사기를 망설인다. 최악의 가뭄과 전력난에 허덕이면서도 속수무책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동안 이란 권부는 미국과 서방의 제재와 압박을 탓했다. 사실이다. 제재만 아니면 잠재력을 가진 이란은 진즉 역내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미국과 서방, 그리고 중동 이웃 국가들의 질시 속에 제재를 견디며 버티고 있는 걸까?

청년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산 중인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2월 31일 도로에 웅크리고 앉은 남성이 시위 진압을 위해 이동하던 경찰 오토바이 행렬을 막아서고 있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시위 당시 전차를 맨몸으로 가로막았던 ‘탱크맨’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왔다./X

청년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산 중인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2월 31일 도로에 웅크리고 앉은 남성이 시위 진압을 위해 이동하던 경찰 오토바이 행렬을 막아서고 있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시위 당시 전차를 맨몸으로 가로막았던 ‘탱크맨’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왔다./X


종교에 포획된 정치 때문이다. 그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호메이니 혁명을 통해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 이란은 안으로는 체제를 공고히 하고, 밖으로는 자신들이 완성한 신정 혁명 체제를 이슬람권에 확산시키는 정책을 폈다. 혁명수비대를 통해 역내 대리 세력을 키워왔다.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 아사드 전 정권, 그리고 예멘의 후티 반군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이다. 이슬람과 대적하는 유대-기독교 문명권의 전위 이스라엘과, 이들에 부역하는 역내 국가 정부들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시아 혁명을 펼친다는 논리였다. 공산주의 이념을 확산하려던 구소련의 코민테른이 연상된다. 이란 국민도 동의해 왔다. 역사적으로 중동에서 식민주의 세력인 서방은 정의롭지 않았고, 탐욕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독재자 팔레비 왕정을 몰아내고 이슬람 성직자 통치 체제를 만든 대의를 찬성했고, 이 체제를 널리 퍼뜨리는 것을 알라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대가로 반세기 동안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수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이제 이란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심각한 인지 부조화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주어진 여건상 마땅히 누려야 할 이상과, 비참한 실제 현실 간의 괴리가 너무 크다. 혁명의 수출도 좋고, 이슬람 공화국 체제도 다 좋은데 내 나라가 먼저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통렬하다. 종교 이념의 순수성을 앞세우며 그나마 없는 돈을 털어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돕다가 얻은 것이 자국 경제 붕괴라면 합리화는 어렵다. 이란 국민들은 최근 3년 동안 수치스러운 사건들을 계속 겪었다. 자국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가 추락하고, 테헤란 시내 한복판에서 친이란 하마스 지도자가 이스라엘에 의해 폭살당했다.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미군의 전폭기가 본토를 유린해도 속수무책이고, 급기야 미국에 이어 유엔도 제재에 나서 자국 화폐가 휴지 조각이 되어가는 공포 앞에 섰다. 안보와 경제가 동시에 무너지는 징후다. 혁명의 완성은커녕 국가가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제 그동안 체제를 지지하던 바자르 상인들과 빈민들도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번 시위로 이란 정권이 바뀔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대중의 저항을 결집할 지도자가 없고, 정부의 공권력은 건재하다. 그러나 균열은 더 커졌다. 사람들은 최고지도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혁명수비대의 영웅 솔레이마니 동상을 불태웠다. 권부는 고민해야 한다. 중앙은행장이나 경제정책을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제재 해제가 열쇠다. 혁명 수출의 국시를 내려놓고 핵의혹을 스스로 해소하는 길 외에는 답이 없다. 다소 억울하고 자존심 상할지 모르나, 핵합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잠재력을 현실로 바꿔내는 선택이 곧 이기는 길이다. 배고픈 국민들의 비명을 외면하는 권력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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