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자이안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 교수
자유무역 후퇴로 국제사회는 경쟁의 무대로 변질
특히 한국은 미·중 갈등 충격이 교차하는 곳 노출
핵을 무기로 존재감 키우는 북한 기회주의도 위험
中의 통제가 대만 반발 키워 구조적 리스크로 확대
공급망 등 분산시켜 韓 외교·경제적 회복력 키워야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단순한 패권 다툼을 넘어 국제질서 전반을 재편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전후 수십년간 유지돼 온 자유무역 질서는 후퇴하고, 국제기구와 국제법은 협력의 규칙이 아니라 강대국이 충돌하는 경쟁의 무대로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같은 기술혁신, 기후변화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변수까지 동시에 작용하며 세계는 복합적 전환기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등 이른바 '샌드위치 국가'는 과거처럼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거나 거리를 두는 전략만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한쪽에 서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보상을 가져오던 환경은 사라졌고,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는 구조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경쟁과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정세 전문가인 충자이안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 교수(사진)는 4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국제환경에서는 동맹도, 중립도 자동적으로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특히 한국은 지정학과 공급망, 해상교통로 측면에서 미중 경쟁의 충격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과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비의 문제"라며 공급망과 파트너십을 분산시키고, 위기 상황에서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외교·경제적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유무역 후퇴로 국제사회는 경쟁의 무대로 변질
특히 한국은 미·중 갈등 충격이 교차하는 곳 노출
핵을 무기로 존재감 키우는 북한 기회주의도 위험
中의 통제가 대만 반발 키워 구조적 리스크로 확대
공급망 등 분산시켜 韓 외교·경제적 회복력 키워야
■ 충자이안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 교수는 △싱가포르국립대(NUS) 정치학과 교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산하 카네기 중국 비상주 연구원 △미중 관계·동아시아 안보 전문가 △미국 프린스턴대 정치학 박사 △홍콩대학 교수 △싱가포르 학술 플랫폼 AcademiaSG 편집위원(현) |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단순한 패권 다툼을 넘어 국제질서 전반을 재편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전후 수십년간 유지돼 온 자유무역 질서는 후퇴하고, 국제기구와 국제법은 협력의 규칙이 아니라 강대국이 충돌하는 경쟁의 무대로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같은 기술혁신, 기후변화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변수까지 동시에 작용하며 세계는 복합적 전환기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등 이른바 '샌드위치 국가'는 과거처럼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거나 거리를 두는 전략만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한쪽에 서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보상을 가져오던 환경은 사라졌고,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는 구조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경쟁과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정세 전문가인 충자이안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 교수(사진)는 4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국제환경에서는 동맹도, 중립도 자동적으로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특히 한국은 지정학과 공급망, 해상교통로 측면에서 미중 경쟁의 충격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과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비의 문제"라며 공급망과 파트너십을 분산시키고, 위기 상황에서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외교·경제적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국제정세를 어떻게 보나.
▲지금 국제질서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중대한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축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경제, 안보, 기술, 환경, 인구구조가 함께 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이어져 온 글로벌 경제 자유화 흐름은 분명히 약화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 경제권의 성장둔화와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국제기구와 국제법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기구와 법이 협력의 장이 아니라 경쟁의 무대로 바뀌면서 제도 자체가 점점 공허해질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런 변화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각 요소가 서로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공급망은 정치화되고 이는 안보 경쟁을 자극한다. 과거에는 경제적 상호의존이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상호의존 자체가 압박 수단이 됐다. 이 구조적 전환은 단기간에 되돌리기 어렵다.
―미국이 변한 것인가.
▲미국은 과거에 비해 글로벌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려는 의지가 분명히 약해졌다. 더 중요한 점은 이를 대신해 그 역할을 떠맡을 수 있는 다른 강대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제질서에 일종의 공백이 생기고 있고, 불안정성은 커지고 있다. 미국 내부적으로도 국제 개입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돼 있고, 국내 정치일정과 여론이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이런 환경에서는 미국의 약속이 제도보다는 정치 상황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동맹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읽기가 훨씬 어려워졌고, 이는 각국이 자체적인 대비를 강화하도록 만든다.
―미중 경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어느 한쪽이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술과 공급망 모두에서 마찬가지다. 양측 모두 자신들이 상대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기술과 공급망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양측 모두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중복투자와 비용 상승을 감수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성장둔화와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은 동맹 체제라는 중요한 강점을 갖고 있는데 이 점이 경쟁구도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트럼프 2기의 외교노선은 어떻게 평가하나.
▲많은 이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첫번째 임기와 유사할 것으로 예상했다. 언행은 파격적이더라도 실제 정책은 기존 틀 안에 머물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번째 임기가 더 이념적이며 미국의 약속과 공약이 이전보다 훨씬 불확실해진 모습이다. 이는 동맹국 입장에서 전략적 계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미국의 정책이 장기적 틀보다는 단기적 정치 계산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념 기념행사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그의 왼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른쪽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 있다. 신화연합뉴스 |
―미국이 중국과 관계를 위해 동맹을 배신할 수도 있나.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핵심 문제는 베이징과 워싱턴이 서로의 약속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다. 상호 불신이 큰 상황에서는 어떤 합의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또 미중 관계가 일정 수준 완화되더라도 경쟁의 구조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기적 안정이 오히려 중장기적 불확실성을 가릴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중국은 한국을 일정 부분 압박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한 '쐐기 전략'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은 한쪽을 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압박을 피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한국은 해상교통로, 항공노선, 해저케이블 등 글로벌 무역과 금융·통신의 핵심 경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경로들은 평시에는 보이지 않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취약지점이 된다. 미중 또는 중일 간 긴장이 고조될 경우 한국은 직접적인 분쟁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상당한 부수적 피해를 입을 것이다. 한국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노출의 문제에 가깝다. 특정 사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신호로 해석될 수 있고, 외교·통상·산업 전반에 연쇄적 영향을 받는 나라다.
―그럼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
▲과거처럼 '헤징'(위험 회피)을 통해 양쪽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전략은 더 이상 잘 작동하지 않는다. 요즘엔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현실적인 전략은 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누적된 대비에서 나온다.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특정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성을 높이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제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준비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지만 위기 상황에서 선택지를 넓혀준다. 중립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와 확전을 사전에 관리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축적하는 일이다.
―'한미일 vs 북중러' 대결이 굳어진 듯한데.
▲북한은 현재의 국제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미중 경쟁과 러시아의 대외 갈등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활용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진전되는 상황에서도 한미일 관계 완화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리 가능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북중 관계 역시 전통적 동맹이라기보다는 상호 필요에 따라 조정되는 관계다. 이런 점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는 더 선명해질 것 같다. 다만 완전히 고정된 블록이라기보다는 사안별로 느슨하게 결속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중국은 군사적·정치적 압박을 통해 대만에도 통제력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대만 사회에서 중국의 통치에 대한 수용도는 매우 낮다. 중국의 압박은 오히려 베이징이 제시하는 통합 구상을 대만 주민들에게 더욱 매력 없게 만든다. 대만이 공식적인 독립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압박이 계속될수록, 반대로 현상 유지에 대한 지지는 강화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은 중국 지도부가 압박 수위를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높이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큰데, 이럴 경우 대만해협의 긴장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일본, 동아시아국 등의 연대 가능성은.
▲일본과 대만, 동남아 국가들은 각기 다른 안보환경을 갖고 있지만 안정적인 지역 환경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해상교통로와 항공노선, 통신 인프라를 공유하는 동일한 공간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이런 공통의 이해에도 위기 예방을 위한 조율과 협력의 의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국가들은 어떤 사안이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전까지는 다른 행위자가 먼저 문제를 관리해주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조건에서는 작은 마찰이 관리되지 못한 채 위험이 확대된다.
―어떤 기술에 주목하나, 또 다른 변수는.
▲AI와 양자컴퓨팅은 세계의 작동 방식을 바꿀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그 영향은 아직 불확실하다. 기술혁신은 생산성과 효율을 높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안보 경쟁과 결합되며 새로운 갈등요인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인구 감소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가재정, 산업구조, 사회 안정성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구조적 변수들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각국은 단기 위기대응과 장기 구조개편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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