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
양희은 | 가수
나이 들수록 식보보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실감하는데 잘 자는 게 잘 사는 것이란 생각까지 든다. 보통 밤 11시쯤 자리에 들어 새벽 5시30분이면 눈이 떠진다. 잘 자야 6시간 정도? 2025년을 보내며 12월24, 25일 이틀간만 6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했다. 말이 6년이지 휴지기 치고는 제법 길었다. 요즈음 지자체에서 가수를 초청해 입장권 1만~2만원씩 받는 공연이 하도 많아 비싼 입장권을 사야 보는 공연은 열기가 많이 식었단다. 나는 공식적인 연습 외에도 애견 초코마저 출입 금지시킨 채 방에 틀어박혀 주문 외우듯 공연 순서 따라 계속 작은 소리로 노래를 해댔다. 천장 높고 넓은 공연장 말고 더 오붓한 공연장이 있었지만 집 먼지 알레르기가 심하고 카펫이 깔려있어 그만 접었다. 가수는 또래 집단의 응원에 힘입어 자라나는 한그루 나무라는 생각인데 젊은이들보다는 40대에서 70대까지가 어우러져 객석을 채워서 엄청난 에너지를 보태주셨고 공연 끝내고 말 그대로 퍼져버려서 어린 날 배운 체체파리에 물려 잠자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어디가 잘못되었나 싶게 잠이 쏟아졌다. 올해가 만 55주년 되는 해라 좋은 기운으로 새 노래를 발표하려면 건강을 챙겨야 한다.
2025년 마지막 주말에는 동창들 모임에 나가 한해 보내기 점심을 냈다. 미니버스까지 대절해 부여의 카페 ‘이만총총31’을 찾아온 친구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우린 와인을 조금씩 곁들여 좋은 일 생긴 친구에게는 축하로, 힘들었던 친구들은 안쓰러워하며 격의 없이 왁자지껄 한해 마무리를 했고 새해에도 건강해서 두루 다 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서울시 문화상을 타고 한해 보내며 보신각 타종하기에 뽑혀 인사동에 나가 박술녀 여사에게 누비 두루마기와 조바위까지 빌렸다. 다행스럽게도 그이와 내가 체격이 비슷해서 당신 옷을 빌려주었다. 보신각 동네는 사통팔달로 바람이 세서 두꺼운 내복이 필수요, 핫팩을 온몸에 붙여야만 견딘단다. 12시 타종을 마치고 이튿날 정월 초하루 생방송이 걱정되었지만 그런대로 잘 맞춰 해냈다.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2005년 1월1일 백두산 천지에 오른 추위에 비하면 세상 못 견딜 추위가 없을 것이다. 그땐 카메라 렌즈에 계속 성에가 생겨 닦아내며 촬영했고, 마스크를 단단히 했어도 입김 때문에 속눈썹에 하얀 눈꽃이 얼어붙었다. 한해 보내기와 새해맞이를 현장에서 해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뉴욕 살 때도 타임스스퀘어 연말 카운트다운 볼 드롭 행사에 한번도 가본 적 없이 따뜻한 집에서 티브이로만 보았다. 가끔 그 생생한 현장을, 사람 가득하고 입김 풀풀 내뿜어지는 곳, 어깨가 부딪히는 거리를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그랬는데 보신각 타종을 하는 현장에 있다니!!! 슬며시 그랬으면 좋겠네 했던 일이다. 늘그막에 이루어질 줄이야.
연말 ‘여성시대’ 편지 중 장승포에서 포차를 하는 ‘당당이’(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여성시대 애청자들의 애칭)님의 사연이 가슴을 울렸다. 매운 바닷가 날씨 탓에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매운 날씨와 겨울 바다 얘기로 자연스레 의자가 붙고 테이블이 이어지는데 국물이 끓고 포차 안에 김이 차면 사람들 얼굴에 핏기가 돈단다. 새파랗게 언 얼굴로 들어서고 손이 말을 안 듣는다며 따신 국물을 찾는 사이 “장사가 안된다, 파리만 날린다” “그래도 이모 힘내 보이소” 응원을 보내고 누군가는 젓가락질하다 안주를 떨구고 다른 누구는 그걸 보고 웃으며 별것 아닌 얘기, 별것 아닌 웃음, 그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란다. 이 포차도 누군가에게 잠시 숨 고르는 자리면 좋겠다는 바람….
한때 그는 세상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단다. 어린 날의 학대, 가난, 폭행, 시집살이의 외로움 속에 점점 작아져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돌처럼 마음 한가운데 박혀 있었단다. 어느 날 보낸 편지가 방송에서 읽히고 “정말 잘 참고 견뎌냈어요. 얼마나 아팠을까? 잘 견뎠어요. 박수 보내드려요. 짝짝짝.” 몸은 추웠지만 마음이 따뜻해진 날, 비닐하우스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흙 묻은 장갑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었단다. “화장대 보내 드릴게요. 거울 보며 스스로에게 잘 참고 살아왔다고 꼭 말해주셔요.” 여성시대의 그 말은 그의 삶에 대한 첫 인정이었고 “나도 괜찮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어둠 속의 한줄기 빛 같았단다. 따뜻한 위로와 박수 “잘 견뎌냈어요” 그 한마디가 그 안에 접혀 구겨져 있던 등을 조금씩 펴주었고 삶을 다시 바라볼 용기를 주었단다. 이 사연을 읽고 또 읽으며 매일 아침 9시5분부터 11시까지 당당이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은 내게도 따뜻한 위로이자 한줄기 빛이고 구겨져 있던 내 가슴 속 상처 입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풀 먹여 다려주는 고마운 시간이라고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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