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을 한 공간에 세워 놓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며 그 과정을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학교 역시 늘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건다.
같은 시험, 같은 시간, 같은 문제・형식만 놓고 보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 경쟁은 공정한가.
아니면 단지 공정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일까.
흑백요리사에서 '흑'과 '백'은 단순한 색 구분이 아니다.
이미 쌓아온 경력, 환경, 기회의 차이를 상징한다.
교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배경은 다르다.
누군가는 어릴 때부터 학습 자극이 풍부했고, 누군가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차이를 잠시 접어두고 '모두에게 공정한 시험'을 실시한다.
이 장면은 '공정하다는 착각'이 말한 능력주의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결과가 좋으면 '노력의 보상'으로, 결과가 나쁘면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출발선의 차이가 쉽게 지워진다는 데 있다.
흑백요리사가 강한 몰입을 만들어내는 이유 중 하나는 '언더독 효과'다.
관객은 이미 완성된 백수저보다,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참가자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런데 학교는 어떤가.
우리는 성장 중인 학생보다 이미 잘하는 학생을 중심에 놓고 있지 않은가.
시험 점수는 결과만 보여 준다.
상승 곡선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실 속 '언더독'은 종종 '노력해도 안 되는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고정된다.
흑백요리사가 서사를 통해 성장을 보여 주듯, 교육 역시 결과보다 과정의 변화를 읽어내는 구조를 더 고민해야 한다.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는 요리를 먹어보지 않는다.
대신 심사 위원의 평가를 통해 판단한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학생과 학부모는 성적표라는 권위 있는 판단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이때 평가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자기 인식의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평가는 지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평가가 곧 '너의 가치'로 오해되는 순간, 배움은 멈춘다.
흑백요리사가 시청자를 설득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왜 이 결과가 나왔는지를 납득 가능한 서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완벽한 공정보다, 설명할 수 있는 평가를 원한다.
'왜 이 점수를 받았는지', '어디에서 성장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꾸면 되는지'가 보일 때, 경쟁은 폭력이 아니라 배움이 된다.
흑백요리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진짜 공정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공정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를 운영하고 있는가.
교육은 경쟁을 없앨 수 없다.
그러나 경쟁의 의미는 바꿀 수 있다.
결과를 가르치는 경쟁이 아니라, 성장을 드러내는 경쟁으로, 줄 세우는 평가가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평가로.
교실이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은 흑과 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김정아 내토중 수석교사 교단에서,흑백요리사,교육,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