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 당시 한국관 모습. 노형석 기자 |
‘지금이야말로 물이 확 들어오는 기회다. 노를 잘 저어야 한다.’
새해 한국 미술판 전문가들이 화두처럼 꺼내고 있는 말이다. 2025년 ‘케이(K)컬처’에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된 배경에는 다채로운 미술유산의 저력이 있었던 까닭이다. 글로벌 히트작이 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요 캐릭터와 배경이 까치·호랑이 민화, 일월오봉도 등 전통회화, 한양도성 건축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조명됐고, 이건희 컬렉션의 미국 전시에서도 전통미술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를 입증했다. 한국 미술사와 동시대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호응을 발판으로 충실한 전략을 세워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올 한해 미술판은 국제적인 트렌드와 미술교류를 의식한 기획전시와 행사들이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복원한 백남준의 로봇 작품 ‘케이456’의 최근 구동 장면.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올해로 20주기를 맞는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의 기념 프로젝트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는 1960년대 중반 나왔던 백남준의 로봇 조형물 ‘케이(K)456’을 처음 복원해 과거처럼 구동시키면서 권병준 작가의 로봇 조형물과 마당극을 펼치는 로봇 오페라 무대를 고인의 기일인 이달 29일 오후 2시부터 센터에서 펼친다. 케이456은 비운의 로봇이다. 1960년대 중반 제작돼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거닐며 퍼포먼스를 벌였으나 1982년 차에 부딪혀 원본은 망실됐다. 1996년 고인이 다시 제작해 2008년 사후 센터에 들어왔으나 기기가 녹슨 채 방치됐던 상황이어서 이번 복원은 백남준 미술사를 복원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센터 쪽은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동유럽 아티스트들의 기획전(3월)과 아르코미술관과 함께 하는 백남준 미술사 심포지엄(4월), 관련 퍼포먼스, 작업들을 망라한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7월), 고인의 행성 우주 작업을 결산하는 기념 전시(7월~내년 2월) 등을 펼칠 참이다.
올해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가 열리는 광주시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관 전경. 노형석 기자 |
올해 미술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2년마다 열리는 격년제 국제미술제 비엔날레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가능성과 세계 동시대 미술의 새 플랫폼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비엔날레가 3개나 국내외에서 마련된다. 먼저 세계 최고 권위의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가관의 한국관 전시가 오는 5월 개막한다. 11월까지 열리는 한국관 전시는 최빛나 큐레이터와 노혜리 작가가 맡는다. ‘요새’와 ‘둥지’라는 개념으로 21세기 ‘해방 공간’을 표현하는 전위적 틀거지의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광주비엔날레와 맞수인 부산비엔날레가 9~11월 잇따라 열린다. 광주 비엔날레는 아시아의 근대성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거듭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호추니엔이 전시감독을 맡아 광주항쟁 등 시대적 사건에 쓰였던 여러 물건에서 예술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획을 구상 중이다. 부산 비엔날레는 아말 칼라프(영국·바레인)와 에블린 사이먼스(벨기에) 여성 듀오가 부산의 다채로운 공간을 배경으로 여러 시각 장르와 음악,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융합형 전시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에 출품할 김범 작가의 1995년 작 먹그림 ‘무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글로벌 소통과 교류의 플랫폼을 강조하는 얼개의 대형 미술관들도 올해 새로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다. 한화그룹이 유치한, 프랑스 파리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퐁피두의 서울 분관이 오는 5월 서울 여의도 63빌딩 신축 뮤지엄에서 개관하고 서울시립미술관 산하 퍼포먼스·디지털아트 특화 공간인 서서울미술관도 하반기 문을 연다. 2024년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던 부산시립미술관도 오는 9월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국내 미술관 공간 가운데 처음으로 2, 3층 전시장을 모두 터서 가변형 대형 공간을 만들었다. 세계 10개 미술관과 공동기획한 개관전을 필두로 첨단 디지털 미디어아트 등 미래형 전시를 집중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6월 지방선거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지방자치단체 미술관의 운영 체제와 관장 인선을 놓고 밀어닥칠 정치 바람도 올해 미술계의 중요한 변수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9월 김성희 현 관장의 임기 종료 뒤 관장 공모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나온다. 지난해 검열 파문을 빚은 서울시립미술관도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조직이나 운영 전반에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인전을 여는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 조형물 ‘신의 사라짐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주요 공사립 미술관들은 기획전 숫자를 늘리고 여성과 소수자 등 최근 국제 전시 트렌드에 발맞춘 콘텐츠를 내놓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제기획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1~5월, 서울관)와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5~9월, 과천관),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6~10월, 서울관)전 등을 준비했다. 아트선재센터는 ‘퀴어’를 주제로 길버트와 조지, 애니 리버비츠, 얀 보, 오인환, 이강승, 최하늘 등 성소수자 아티스트 70여 명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기획전 ‘스펙트로신시시스 서울’(Spectrosynthesis Seoul)을 3~6월 개최한다. 리움미술관도 상반기 세계 1세대 여성 설치미술가 계보를 조명하는 국제 교류전 ‘환경, 예술이 되다-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실험 1956~76’을 연다. 개인전으로는 3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하는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과 리움의 ‘티노 세갈’전(2월)과 구정아전(9월), 호암미술관의 원로 작가 김윤신전(3월) 등이 주목된다.
2023년 5월17일 열린 서울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리모델링 공사 착공식 모습. 노형석 기자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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