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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두컷클래식] 빛이 반짝이는 두 순간, 두 그림, 두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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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애]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에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를 만났을 때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회에서 분명 똑같은 작품(!)을 본 기억이 떠올랐어요.

알고 보니 같은 작가, 같은 제목의 그림이 맞았습니다.

대신 두 그림은 서로 조금 달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그림은 푸른빛이, 예술의전당의 작품은 주홍빛이 도드라졌는데, 도슨트는 그 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어요. "푸른빛의 그림은 정오쯤을, 주홍빛의 그림은 해 질 녘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빛이 시간에 따라 다른 색감으로 퍼지는 사실을 참 세심하게 포착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전시는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동시에 미술계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르누아르처럼, 음악계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클로드 드뷔시의 음악은 낮과 저녁을 각각 어떻게 표현했을지 비교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은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과 <아름다운 저녁>으로 준비했습니다. 각각 점심과 저녁을 대표하는 드뷔시의 음악입니다.

드뷔시 : <목신의 오후 전주곡, L.86>




목신은 반신반인으로 머리와 몸은 사람, 허리부터는 짐승의 모습을 한 신화 속 인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판', 로마 신화에서는 '파우누스'라고 불러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이고 다리와 꼬리는 염소 모양이며 이마에 뿔이 있다. 공황을 의미하는 패닉(panic)의 어원이 되었다.'

판은 요정 님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곧 님프를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님프는 판이 반갑지 않았고, 오히려 판에게 쫓기다가 물속으로 뛰어들기까지 합니다. 곧 갈대로 변해요. 판은 이 갈대를 꺾어 피리로 만들어 연주합니다.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위 내용을 시<목신의 오후>에 담습니다. 그리고 드뷔시가 이 시에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들어요. 그 음악이 바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입니다.

아래는 시의 일부입니다.

아 님프들의 모습이 영원히


변치 않길.

이토록 환하다오.

이들의 발그레한 살결, 깊은 잠에 빠진 숲속처럼 졸고 있는 공기 속에 살랑살랑 떠오르는구나.

태양에 질 수 없을 나의 허영으로 가득한 늪

불꽃처럼 반짝이며 터지는 듯한 햇빛 아래 입 다문 채 조용한



시는 숲속 오후의 나른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꿈과 환상, 잠결을 오가는 상황을 그립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처음 들리는 플루트 선율은 아지랑이 피는 나른한 오후를 떠올리게 합니다. 3분 53초부터는 오보에가 바통을 이어받아 두 번째 주제를 제시하며, 4분 49초에 느린 속도로 세 번째 주제가 나타나요.

6분 55초부터는 주제들이 발전해나가지만, 나열하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8분 7초부터 재현부로 이어진 뒤, 9분 50초부터 마무리하는 구간에 이릅니다. 이 역시 기억을 더듬는 정도로 짧은 형태예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음악은 전체적으로 모호한 색채감을 줍니다. 긴장감을 주고 해결하는 전통적 화성적 구조에서 벗어났고, 무슨 조성인지 알 수 없도록 중심음을 흐리게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분위기예요. 마치 인상주의 그림의 흐릿한 경계를 소리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숲속 환상을 그리는 찬란한 빛의 움직임이 음악을 통해 그려지시나요?

드뷔시 : <아름다운 저녁, L.6>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인상주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라면, <아름다운 저녁>은 드뷔시의 초기 작품으로, 인상주의적 표현이 그의 스타일로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피아노 반주로 아른거리는 빛을 표현한 것,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어딘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분위기로 저녁의 풍경을 묘사한 것 등 구석구석 인상주의로 가는 씨앗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저녁>은 프랑스의 작가 폴 부르제의 시를 가사로 쓴 작품이에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석양에 강물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온화한 바람이 밀밭을 스칠 때,

행복하라는 말이 세상 만물에서 새어 나와

괴로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합니다.

세상에 존재함 그 자체를 만끽하세요.

우리는 젊지만, 저녁은 아름답지만,

마치 물결처럼 그곳으로 떠나야 하기에.

물은 바다를 향해, 우리는 무덤을 향해!

<아름다운 저녁>은 가사가 있는 성악곡으로 태어난 작품이라서, 선율에 담긴 붉은 노을빛의 색감이 더 짙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다만, 저는 바이올린곡을 더 좋아해서, 음원도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르누아르의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놀라운 사실도 함께 알려드릴게요. 르누아르가 그린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는 이 세상에 총 6점이 있는데, 현재 2점이나 한국에서 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이런 특별한 일이 또 오기는 힘들 것 같아요.

예술의전당의 '오랑주리-오르세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 전은 1월 2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3월 15일까지 진행되니, 조금은 서둘러 작품을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푸른 오후와 붉은 저녁이 예술작품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비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실 거예요.

더불어 칼럼을 통해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드뷔시의 음악을 만났으니, 같은 흐름의 다른 음악들까지도 더 가깝게 다가오길 기대합니다.

글 · 유신애 - 클래식 음악 작가

저서: <로맨스 인 클래식>, <베토벤 빼고 클래식>

피아노 전공 후 클래식 전문 기자, KBS 클래식 프로그램 음악 코디네이터 활동. 현재는 강연과 북토크를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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